⑥선사·화주는 경제공동체, 국가가 해운 보호해야

해운업계, “‘해운재건’ 무너뜨리려는 공정위”

외국기업은 적게 국내기업은 많이…이해할 수 없는 과징금 철퇴

“2030년까지 150만TEU 이상의 컨테이너 선복량을 확보해 해운 매출액을 70조 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세계 해운산업 리더국가로 도약을 이끌겠습니다.”

지난 6월 HMM의 초대형선 20척 발주 마지막 선박인 ‘한울호’ 출항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해운산업 리더국가 실현전략’을 발표했다. 역설적이게도 전략발표 한달 전에는 공정위가 각 선사에게 과징금 규모를 통보하는 등 앞에서는 해운재건 성공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과징금 철퇴를 예고하는 두 얼굴을 보이자 업계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특히, 공정위가 외국선사보다 국내선사에 더 과한 과징금을 예고한 행위는 무역국가인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양창호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KMI)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보고서 판단에 대한 소고’를 통해 “공정위에 의해 부당한 공동행위로 최종 심사될 경우 여러나라 경쟁당국으로부터 가격카르텔 행위로 조사받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해운이 글로벌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만 경쟁법에 적용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조치는 경쟁국 선사와 화주보다 우리 선사와 수출입화주에게만 불리한 조치”라고 주장하며, 공정위의 판단을 에둘러 비판했다. 무역국가에게 있어 해운은 화주를 보호하는 방패막이로 순망치한(脣亡齒寒)같은 관계이다. 관련업계는 산업을 보호해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할 국가가 존재의 이유를 망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편집자 주>

-공정위 ‘운임담합’ VS 해수부 ‘합법적 공동행위’ 이견

지난 5월 공정위는 국내외 컨테이너선사들이 부당한 공동행위로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면서 약 8,000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 납부를 명령했고 이에 맞서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선사들의 해당 행위는 공정거래법을 적용받지 않는 합법적인 공동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정부부처간 이견을 보이고 있다.

공정위는 선사들이 해운협회가 사장단 연찬회 문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던 2003년부터 공정위가 첫 조사를 시작한 2018년까지 총 15년간의 기록을 과징금 부과 기준으로 삼았다. 또 조사를 시작한 동남아항로에 한해 8,000억 원을, 현재 조사 중인 한일과 한중항로에 대해서도 비슷한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측은 다른 법률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는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하는 공정거래법 제58조에 해운업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근거로 공동행위를 허용한 해상운송법 개정안이 공정거래법보다 2년 앞선 1978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후법인 공정거래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해수부와 해운업계는 공정위 출범 과도기동안 적용받을 수 있게 공정위 상위부처인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서 해운법에 법률을 제정하기 전까지 사용할 수 있는 등록증을 발급해줬으며 이후 40년간 관련 법 제정이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해운업이 공정거래법을 적용받지 않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해운협회 관계자는 “공정위가 기획재정원에서 쪼개져 출범하면서 법률제정과 부처 출범의 과도기동안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경제기획원에서 등록증을 발급해 줬는데, 이후 40년동안 공정위가 잊어버린 것인지 법률제정이 안된 상황이다”며, “공정위도 지난 2019년 국민신문고에 ‘해운기업의 공동결정행위가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하는 대표사례’라고 소개해 놓고 지금와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공정위측은 등록증 발급과 별개로 선사들이 해운법 제29조에 공동행위의 탈퇴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금지규정을 위반했고, 화주단체와 협의 및 협의 후 해수부장관에게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한 공동행위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해운사 담합행위 해수부가 규율 ‘해운법 개정안’ 두고는 상임위도 충돌

법적용을 두고 팽팽하게 맞선데 더해 해운사의 담합행위를 해수부가 별도로 규율하는 해운법 개정안을 두고는 양 부처에 더해 상임위에서도 충돌했다.

위성곤 의원이 발의한 해운법 개정안은 해운사의 공동행위를 해수부가 규율하는 것이 주요 골자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률심사소위원회를 통과된 상태이다. 이에 공정위 상임위인 정무위원회는 농해수위가 정무위 관련 법안을 심의·의결하면서 공정위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설상가상 당초 해운법을 찬성해왔던 무역협회마저 해운사들의 공동행위가 공정거래법 적용에 배제될 경우 화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면서 반대의견을 제출해 농해수위 전체회의 상정은 보류됐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화주들이 국내 선사들에게 과징금을 과하게 적용함으로써 본인들도 피해를 입기 때문에 해운법을 찬성했는데, 개정안에 공정위 제재가 아예 빠져버리면 이 또한 문제라서 반대의견을 낸 것이지 공정위 제재가 선사들에게 가혹하다는 입장이 변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양측 수장까지 나서서 관련 제재를 할수 있는 주무부처는 본인들이라며 정당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달 초 문성혁 해수부장관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해운산업 특성상 선사가 아닌 고객인 화주들을 위해 국제적으로도 독점금지법 적용을 예외하고 있고, 해운선사들이 그동안 공동행위를 통해 폭리를 취한 경우가 단 한번도 없었다는 내용을 중점 피력했다.

문 장관은 “해운업계의 공동행위에 대한 법적근거는 이미 1978년부터 마련돼 공정거래법에서 제외돼 왔다”면서, “해운업계는 신고제로 시장이 완전히 개방돼 있어 경쟁체제에서 담합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맞서 조성욱 공정위원장도 최근 출입기자 간담회를 통해 “공정위가 하는 해운담합 사건은 해운법 29조를 넘어서는 불법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다만, 과징금 규모를 최종결정하는 전원회의에서 타 부처 의견을 듣는 창구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한발 물러섰다.

그는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산업 규제와 정합성을 확보하고 집행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부처간 소통과 협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관계부처가 전원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하는 공식적 창구를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 ‘해운철퇴’로 시장불균형 초래…공정거래법 목적과 배치

공정위가 해운사들에게 가하는 철퇴는 공정거래법을 근거로 하고 있는데, 문제는 공정위가 계획한대로 선사들에게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공정거래법의 목적에 크게 위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정거래법 제1조(목적)에는 ‘이법은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의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하고…<중략>…소비자를 보호함과 아울러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제재를 가하면 과도한 경제력 집중이 방지되고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이돼야 하는데, 현재의 공정위의 제재는 외국적선사의 과도한 유입으로 오히려 국내 시장경제가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맹점이 있다.

특히 현재 과징금의 규모가 외국적선사보다 국적선사가 월등히 많은 금액이 부과되면서 도리어 역차별을 겪고, 원양선사보다 연근해선사에만 과하게 적용받고 있는 점은 국내 해운시장에서도 공룡기업만 살아남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공정위는 국내 11개 선사에 5,600억 원 가량을, 해외선사 11개사에 2,400억 원 가량을 부과했다. 이중 HMM은 500억 원 규모로, 국내 중소형선사들의 과징금 규모가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기업에서 과징금을 지불하려면 자산을 매각하는데, 자산 대부분이 선박인 선사들은 선박을 매각해 과징금을 내야한다”며, “이 과정에서 도산하거나 선박 매각으로 항로를 철수할텐데, 위축된 시장에는 자동적으로 외국적선사와 원양선사들이 비집고 들어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진해운의 파산은 덩치 큰 글로벌 선사들의 치킨게임에 상대적 약자가 패배하면서 벌어진 비극이다”며, “국내 연근해선사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공룡선사와 외국적선사만 남게될 것이고, 국내에서 공룡들이 시장을 장악하면 시장 불균형으로 종국에는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대형로펌 한 변호사도 “외국에서도 공정위 성격의 부처가 ‘컨’선사에 과징금을 징수하지만, 지금처럼 외국선사보다 자국선사에 월등히 큰 금액을 부과하는 곳은 거의 본적이 없다”며, “국가의 과징금 부과 기본 원칙이 국가의 경제발전에 손해를 끼치지 않는 수준으로 해야할텐데, 현 공정거래법에는 과징금이 매출액에 연동돼 일정 비율을 부과하도록 하는 절차에 관한 부분만 있어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 스스로 자정노력도 필요…철퇴가 산업 발전 저해해선 안돼

무역국가에 있어 ‘컨’해운은 순망치한같은 관계이다. 자원빈국으로 무역국가로 성장한 우리나라에 ‘컨’해운은 필수라는 명분은 문재인 정부의 최대 성과인 ‘해운재건’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집권당의 대표까지 나서서 최대 성과라고 자축한 해운재건을 두고 HMM을 제외한 연근해선사들은 과징금 철퇴로 웃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정책 성공을 위해 HMM에 수조원을 투입해놓고 뒤에서는 나머지 선사들에게 1~2조 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하는 등 정부정책의 일관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한 해운 전문가는 “정책지원을 해놓고 실제로는 1위 기업을 살리기 위해 나머지 기업에서 세수 확보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겠느냐”면서, “여지껏 정부에서 특정산업에 지원을 약속해 놓고 뒤에서 다른 행동을 한 전례가 없다”고 비판했다.

국가의 해운산업은 원양선사와 이 원양선사를 뒷받침해줄 피더 역할을 하는 연근해선사와의 공존을 통해 시장 질서와 조화를 이루면서 성장해 왔다. 이러한 한국해운시장에 앞으로 HMM 하나만 남겨질 경우 오히려 독과점에 대한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HMM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나머지 선사들에게는 회사의 존폐가 흔들릴 규모의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한다면 한진해운 파산으로 겪은 한국 해운의 대외신인도가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A선사 관계자는 “이미 국제적으로 해운을 바라보는 한국정부의 시선이 왜곡돼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대외신인도에 큰 금이 가 있는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해운재건 정책을 폈던 것 아니냐”면서, “정책 이면에 공정위 철퇴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 외국선사들과 그 선사들의 당국에서도 보복성 조사를 펼칠 수 있는데 또 다시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할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번 공정위의 철퇴에 대해 해수부와 공정위 양측 모두 부처간 조율을 통해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선사들의 불공정행위가 있었다면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규모가 산업을 망가뜨리는 수준이 되선 안된다는 것이다.

또 업계 스스로도 소규모 화주나 특정항로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확보하더라도 매너십을 갖추는 등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는 전언이다.

한 해운 전문가는 “어떤 국가도 산업체의 잘못을 그냥 넘어가지는 않지만, 그 철퇴로 자국기업은 죽이고 외국기업에 유리하게 하지는 않는다”면서,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두고 과도한 훈육은 반발심만 불러일으키지만, 적당한 훈육은 올바른 성장을 이끌어 내는데, 이것이 정부의 역할임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해운업계도 국내 화주들이 낮은 운임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반대로 높으면 ‘자기들 돈 뜯어서 돈벌었다’는 이유도 없는 비아냥을 듣는 경우도 있어 늘 비즈니스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오지 않았냐”면서, “이번 공정위 사건의 발단도 수입목재업체에서 특정선사에게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업계 스스로도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행위를 자제하는 등 자정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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