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항만 터미널 투자로 눈길 돌린 글로벌 해운업계

종합물류기업 발돋움 위한 기초, '터미널' 확보에 사활

HMM, 항만 개발부터 운영까지 전략적 접근 필요

                                            HMM의 네덜란드 로테르담 터미널
                                            HMM의 네덜란드 로테르담 터미널

사상 유례없는 해운호황으로 엄청난 실탄을 확보한 글로벌 선사들이 올해 집중한 투자처는 어디일까? 지난해까지는 종합물류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항공과 물류기업을 잇달아 인수하거나 신규 진출하는 등 신사업에 주력해 왔다면, 올해는 집토끼인 ‘항만 터미널’ 사업 확장이 두드러진다. 특히, 최근 남미 터미널 운영사를 인수한 하팍로이드는 과거부터 터미널 확장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왔으나, 최근 전략을 바꿔 환적화물의 효율적인 처리 명목으로 지속적인 항만 터미널 투자 입장을 밝혔다. 주목할 점은 선사들이 터미널 운영사를 인수하거나, 혹은 새로운 항만을 신규 개발단계부터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국내 선사인 HMM은 해외에 터미널 개발단계부터 참여해온 전례가 없어 아쉽다는 분석이다. 항만업계 한 관계자는 “무역 트렌드가 대륙간 역내 무역으로 바뀌면서 기존 대형 항만이 저물고 중소형 항만이나 지역이 들 수도 있다"면서, "자사가 기항하지 않더라도 타 선사들이 충분히 이용한다면 과감하게 투자를 하기도 하는 등 터미널 확보에 있어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어렵다. 이에 본지에서는 글로벌 선사들이 그동안 벌어들인 자금으로 터미널 사업을 어떻게 확장했는지 살펴보고, 국내 해운 정책 방향에 대해 모색해 봤다.<편집자 주>

- 하팍로이드, 환적화물 효율적 처리 위한 터미널 사업 확장

전통적으로 터미널 확보에 소극적이었던 하팍로이드는 지난해 9월 독일 빌헬름스하펜 터미널 지분을, 지난 6월에는 이집트 다미에타를 건립키로 했으며 지난달과 이달 이탈리아 터미널 운영사와 칠레 터미널 운영사 지분을 잇달아 인수했다.

먼저 지난해 9월 APMT(머스크 터미널)가 보유한 독일 빌헬름스하펜 컨테이너 터미널 지분 30%와 철도 터미널 지분 50%를 인수했는데, 빌헬름스하펜 터미널은 2012년 개장한 부두로 지난해 약 70만TEU를 처리한 바 있다.

관련업계는 하팍로이드가 이미 함부르크에 CTA(Container Terminal Altenwerder) 지분 25%를 보유하고 있으나, 선박 대형화에 따른 1만6,000TEU 이상 선박 기항이 불가능함에 따라 인근 빌헬름스하펜을 전략적으로 인수했다고 분석했다.

이집트 다미에타는 유로게이트(Eurogate), 컨트십 이탈리아(Contship Italia)와 공동 개발키로한 터미널이다. 수에즈 운하 인근에 위치한 다미에타는 나일강과 지중해가 만나는 요충지로 꼽히는데, 해당 터미널은 2024년부터 운영될 예정으로 연간 330만TEU 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팍로이드측은 해당 투자에 대해 "신규 터미널을 활용해 이집트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동지중해 지역의 환적 운영 효율성을 크게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교통부도 "다미에타 항만을 컨테이너 통합 물류 허브로 조성하고 이후 철도 등 내륙물류 인프라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지분 49%를 인수키로 한 이탈리아 터미널운영사 스피넬리 그룹은 지중해 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이탈리아 제노아, 살레르노에서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창고 및 수배송, 세관통관 등의 물류서비스를 제고하고 있다.

또, 지난 4일에는 칠레 소시에에다드 마트리즈 항만터미널과 물류사업을 인수했다. 세부적으론 사암(SAAM) 포트, 사암 로지스틱스, 소시에에다드 마트리즈 부동산 등을 인수하는데, 항만사업의 경우 칠레와 중남미, 미국 플로리다 항만 터미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탈리아 스피넬리 터미널 (사진출처 : 하팍로이드 홈페이지)
 이탈리아 스피넬리 터미널 (사진출처 : 하팍로이드 홈페이지)

국내 원양선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지역별 환적 거점항만 확보를 위해 터미널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통합물류보다는 해상운송 관련 영역 투자에 집중한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며, "대주주가 이미 루프트한자(항공)와 퀴네나겔(물류·포워딩) 등을 보유하고 있어 고비용의 환적화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거점항만 확보가 목표인 듯 하다”고 설명했다.

- MSC 터미널 법인 TIL, 로테르담·베트남 터미널 신규개발 추진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GTO) 6위인 MSC의 TIL은 지난 7월과 8월 잇달아 굵직한 항만 개발 투자계획을 공표했는데, 또다른 GTO인 허치슨과 로테르담 터미널 공동개발을 추진하고 베트남 현지 선사 및 사이공(호치민) 포트와 호치민 인근 항만 껀저에 초대형항만을 건설할 계획이다.

앞서 MSC는 올해부터 기존 1위였던 머스크를 제치고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로 올라선 바 있다. 특히, 자회사인 TIL을 통해 터미널 운영사로서 부산신항 1부두(PNIT)를 포함해 전세계 27개국 40개의 컨테이너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

선사 관계자는 “TIL은 2000년 설립된 터미널 운영 법인으로 MSC가 지분 60%를 보유하고 있다”며, “이미 글로벌 운영사지만 타 운영사들과 합작법인 설립을 통한 공동 투자와 운영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베트남 껀저의 경우 지난 7월 TIL측에서 6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항만 건설 추진을 공표했으며, 2024년 1단계 공사에 착수해 2028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베트남 국영선사인 비나라인과 사이공포트와 협력 중이다. 참고로 껀저항 개발은 총 7단계로 진행해 2040년 최종 완료될 예정이다.

MSC 롱비치 터미널 (사진출처 : MSC 홈페이지)
MSC 롱비치 터미널 (사진출처 : MSC 홈페이지)

껀저항이 개발되면 연간 1,500만TEU 물량 처리와 2만4,000TEU급 초대형선 접안도 가능하며, 인근 싱가포르항을 벤치마킹해 물량 80%를 환적화물로 채울 계획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허치슨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자동화 컨테이너 터미널 개발을 추진키로 했는데, 신규 터미널은 기존 허치슨의 ECT델타Ⅱ터미널과 허치슨과 MSC가 공동 운영하는 ECT델타 북측(DDN)터미널을 합쳐 개발할 예정이다. 단계별로 개발할 예정인 해당 터미널은 2027년 1단계 개발이 완료되면 운영을 시작할 전망이다.

- 지분인수보다 신규 개발하고 비우호국 항만 매각하는 머스크…눈치보는 中코스코

GTO 2위로 광범위한 항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머스크의 APMT는 경쟁선사들이 신규 항만개발과 지분매입에 집중할 때 오히려 비전략항만의 지분을 매각했다.

지난 8월 APMT는 러시아 터미널 운영사인 GPI(Global Ports Investments) 보유지분 30.75%를 러시아 종합물류기업 델로(Deo)그룹에 매각키로 했다. 델로그룹은 APMT와 오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으며, GPI 지분도 30.75%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최근 머스크가 러시아 사업활동 중단하면서 보유 지분 전체를 델로측에 넘긴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유럽선사이면서 친미기업인 머스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모든 러시아 서비스를 중단한데에 따른 것으로, 향후에도 러시아에 자산을 보유하거나 사업을 영위하지 않을 것임을 공표한 만큼 불필요 자산을 추가 매각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GTO 현황
                                                                                                                                       GTO 현황

머스크는 러시아 사업은 철수했지만 반대로 남미 브라질 수아페항만에는 컨테이너 터미널 개발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수아페는 주정부가 브라질 북동부 물류 중심지로 개발하기 위해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지역으로, 현지 조선소 부지를 일부 인수해 컨테이너 항만으로 전환시킬 계획이며, 2025년 터미널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2016년부터 GTO 1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선사 코스코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로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하다. 코스코의 터미널 투자와 관리는 코스코쉬핑포트(CSP)에서 추진하는데, 코스코의 터미널 네트워크 자체가 아시아와 유럽위주로 편성돼 타 선사대비 서비스 영역은 제한적이다.

원양선사 관계자는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에 발맞춰 해운과 항만물류 분야에 집중 투자를 해왔었지만, 러·우크라이나 전쟁이후 중국에 대한 비토 여론과 외국자본 의존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앞으로의 해외 사업 진출에도 상당부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9월 코스코는 독일 함부르크항 컨테이너 터미널인 CTT(Contailner Terminal Tollerort) 지분 35%를 인수키로 합의했으나, 지난달 거래완료 기한을 올해말까지 연장하는 등 관련 절차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전략적 터미널 개발 or 지분인수하는 글로벌 선사들, HMM은?

글로벌 선사들이 직영 또는 지분확보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터미널에 비해 HMM은 보유 터미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타 선사들에 비해 직접 항만개발을 해본 전례가 없는 것도 향후 신규 터미널 확보에 아킬레스가 될 전망이다.

현재 HMM은 자영터미널로는 부산과 대만 카오슝(2개), 미국 타코마터미널 정도이며, 지분 보유는 싱가포르, 네덜란드 로테르담, 스페인 알헤시라스, 미국 롱비치 등이다. 전체 6개국에 8개 터미널을 확보한 것이 고작이다.

  글로벌 선사별 주요 터미널 투자 현황
  글로벌 선사별 주요 터미널 투자 현황

게다가 현대상선 시절부터 보유한 터미널은 부산과 카오슝, 타코마 정도이며, 한진해운 파산에 따른 해외터미널 인수 전략으로 알헤시라스와 롱비치, 카오슝을, 싱가포르는 PSA와 전략적협력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확보된 정도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비컨테이너선 사업부문도 있었던데다 터미널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유 터미널이 한진해운에 비해서도 많지 않았고, 항만에 대한 직접 개발 능력도 떨어져 신규 투자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한 감이 없지 않다”고 설명했다.

파산한 한진해운이 현지에서 직접 항만개발과 직영까지 연결해 운영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한진해운은 스페인 알헤시라스와 베트남 카이멥(현 한진 보유)에서 항만을 직접 개발해 운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완성되지 못했지만 미국 동부 플로리다주의 잭슨빌항 개발의 경우, 플로리다주에서 직접 개발을 요청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 한진해운 관계자는 “스페인의 한적한 시골(알헤시라스)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상 아프리카와 수에즈를 연결할 요충지라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잭슨빌은 당시 미 동부 터미널을 허치슨이 장악하고 있었던 문제가 있어 플로리다측에서 회사에 직접 개발부터 참여해 달라고 요청받아 추진했으나, 노조 문제 등이 난항을 겪으면서 개발 실행까지 연결되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터미널 확보, 개발부터 운영까지 전략적 접근 필요

일반적으로 터미널은 선사의 판단에 의해 개발을 하기도, 지분만 투자하는 등의 방법으로 확보한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선사들의 몸집이 커지면서 주요 요충지나 잘 되는 항만의 경우, 이미 투자나 개발이 완료돼 신규 확보가 쉽지않은 상황이다.

한 GTO 관계자는 “전략적 요충지로 판단될만한 항만들은 이미 개발이 다 돼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주요 GTO나 선사들이 선점하고 있어 신규 진입을 위해서는 기존 터미널을 비싸게 인수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매물이 잘 나오지도 않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HMM의 경우 친환경 설비를 포함해 2026년까지 선박과 터미널, 물류시설 등에 1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중장기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 터미널 확보에는 타 선사에 비해 투자 규모가 부족해 일부 우려가 된다.

다만, 관련업계는 무역 트렌드 변화에 따라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과거에는 선사들이 직접 기항하는 곳에만 투자해 왔다면 앞으로는 경쟁선사가 이용하는 항만에 전략적인 투자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HMM 보유 터미널. 출처-HMM 2021년 ESG 보고서
 HMM 보유 터미널. 출처-HMM 2021년 ESG 보고서

GTO 관계자는 “선사 베이스가 없는 GTO들이 앞으로 선사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상황인데, DP월드가 피더선사를 인수하고 PSA가 각 선사들과 기존 보유 터미널의 지분을 주는 것도 그런 흐름 때문이다”면서, “코로나와 미중무역전쟁의 장기화로 무역 트렌드가 기존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에서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중소형 항만이 부각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기존에 잘됐다고 했던 대형항만들이 쇠퇴할 수도 있고 새로운 항만이 부각될 수도 있는 등 불확실한 부분이 있는데, 선사들 입장에서 주로 기항하는 항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타 선사에 대한 유치 영업을 하는 등 또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항만업계 관계자도 “기존 선사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터미널들을 개발하다 점점 사업체가 커져 터미널 법인으로 분사했는데, 실제로 선사들은 경쟁선사가 운영하는 터미널을 가급적 이용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며, “대형선사들도 기항지를 세분화시키고 좀 더 촘촘하게 항로를 연결하는 디테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기 때문에 본인들이 기항하지 않는 터미널도 전략적으로 투자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러한 선사들의 이용을 고려해 해양수산부도 HMM을 비롯한 원양선사 육성정책에 해외 항만 요충지에 개발 시점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나아가 종합물류기업으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항만업계 관계자는 “선사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이 부족한 정보력으로 항만에 대해 개발단계부터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보니 항만국에서 해외 항만개발에 대한 정책지원 업무를 하는데도 실적이 전무한 상태 아니냐”며, “해운물류국과 상호협력을 통해 HMM이 해외 항만개발에도 나서면 결국 국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HMM도 터미널 개발이나 운영에 대한 전문인력을 보강해 전략적 요충지 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항만 투자에 있어 해수부가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이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할 것이며, 나아가 해운과 항만, 물류를 연결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시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HMM의 부산신항 4부두
HMM이 운영하는 부산신항 4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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