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만 13조원 보유한 HMM을 5~6조에 인수? /
인수자금 대부분도 FI 차입 의존 /
관련업계, "산은의 M&A 강행 이해할 수 없어"

현재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HMM의 인수후보로 하림 등 자금력이 부족한 중견기업이 유력하게 떠오르면서 이른바 '무자격 M&A'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계절적으로 성수기임에도 컨테이너 시황은 900p대를 기록하면서 해운불황이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든든한 새주인은 커녕, HMM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기업 3곳만 인수 적격심사를 통과해 HMM의 M&A가 방향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컨테이너 운임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전주대비 34.42p 하락한 999.25p를 기록했다. ‘컨’ 해운의 계절적 성수기인데다 중국 중추절(추석)을 앞두고 물량 밀어내기 등 특수효과를 노릴 수 있음에도 운임은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호황때 발주한 초대형선이 지속적으로 인도됨에 따라 수급 불균형으로 해상운임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통상 ‘컨’선사들의 해상운임 마지노선은 1,000p로, 이보다 낮아지면 영업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전통적인 ‘컨’ 성수기인 3분기에도 900p대를 기록했다는 것은 해운불황이 가시화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외적인 해운환경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상황에 더해 대규모 혈세를 투입해 살려낸 HMM의 새 주인 후보기업들의 덩치가 작아 사실상 '무자격 M&A’라는 비판으로 이어져 귀추가 주목된다.

HMM을 인수할 후보로 적격심사를 통과한 하림, 동원, LX 등 3사는 공히 보유 현금보다 2~3배 높은 인수가를 제시했다. 이들 기업은 부족한 현금 보유분을 FI(재무적 투자자) 등으로 메우고, 인수 후에는 HMM이 보유한 현금 13조 원을 인수대금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해운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3사 모두 보유 현금은 6,000억~2조5,000억 원 가량 수준인데, 이들이 제시한 인수가는 5~6조 원 수준이다”며, “어떤 기준으로 이러한 기업들이 적격심사를 통과했는지 모르겠지만, 보유 현금만 13조 원인 기업을 5~6조 원대에서 사겠다고 하면서 그 인수자금마저 대부분 차입으로 충당하겠다고 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분개했다.

이어 “자격 미달인 3사 어느 누구한테 가더라도 인수자금 대부분을 빌려 인수한 것이기 때문에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밖에 없다”며,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2조 원)도 원매수자를 정해 놓고 매각을 진행했는데, 이보다 몇 배나 덩치가 큰 HMM 매각을 이런 식으로 졸속으로 추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해운업은 그 특성상 호황은 짧고 불황이 길기 때문에 보유 현금을 불황에 활용하지 않는다면 '한진해운 파산'과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닫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 상황을 지켜보는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HMM이 한진해운과 엇갈린 길을 걷게 됐던 결정적 이유는 현대그룹 시절 현대건설 인수 실패에 따른 인수자금이 남아 있어 그나마 버틸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컨’ 해운이 호황기에 벌어 들이는 금액이 커지면서 불황도 길어지고 있는 특성을 보이는데 지금 거론되는 인수후보들은 불황을 지탱할 능력은 커녕 보유 현금에만 관심있는 기업들 아니냐”고 우려했다.

금융권 관계자도 “HMM의 현금을 회사에 재투자하지 않는다면 불황에 회사가 흔들려 또 다시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이미 글로벌 선사들이 불황에 대비해 선박 발주나 항공업이나 육상운송업에 진출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인데, 왜 이런 식으로 M&A를 진행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해운 전문가들은 HMM에 정부자금을 지원했던 명분을 되새겨 매각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 해운 전문가는 “HMM에 수조원의 혈세를 투입할 수 있었던 국민 공감대가 무역국가로서 원양선사가 없으면 외국선사들에게 운임결정권 등의 주도권을 뺏겨 물가 상승 등 국민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 아니었던가”라고 지적하고는, “이 때문에 하나남은 선사는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명분과 국민들의 희생으로 현재의 HMM이 있는 것인데, 작금의 M&A를 추진하는 정부당국은 이 같은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운 불황기에 접어든 만큼 HMM을 어떻게 끌고갈 것인지에 대해 해운정책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글로벌 선사들이 이미 벌어놓은 돈으로 미래먹거리를 만들어놓고 있는 중차대한 시기에 무리한 M&A보다는 해운로드맵을 재정립한 후 M&A 밑그림을 다시 그리지 않으면 또다시 한진해운 파산과 같은 아픔을 겪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산업은행 및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난 4일 HMM 인수 후보 3사에 개별적으로 적격심사 결과를 통보했으며, 이들 기업은 지난 6일부터 HMM 인수를 위한 실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2개월간의 실사기간 이후 11월 본입찰에서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는 등 올해 내에 HMM 매각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