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대형선사 선박 재배치로 위기 내몰린 인트라 선사

- 한종길 교수 "'그린 이니셔티브'로 亞시장 주도권 쥐어야”

컨테이너 해운시황의 급격한 하락으로 글로벌 선사들의 잔여 선박들이 아시아 역내 시장에 배치되면서 인트라 선사들이 과잉경쟁 위기에 내몰렸다. 글로벌 선사들의 아시아 역내항로 선박 재배치(캐스캐이딩)는 원양항로의 공급조절 외에 환경규제가 시작된 원양항로에 규제대상 선박들이 대거 아시아시장에 투입되면서 코로나 이전보다 더 가속화되고 있다. 시황 하락시기에 시행돼 왔던 원양선사들의 선박 재배치는 되풀이되는 해운역사이지만, 자유경쟁시장에서 강제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어서 국내 인트라선사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대표적인 해운 전문가인 한종길 성결대학교 교수는 국내선사가 이같은 위기 극복을 위해 “그린 이니셔티브 전략으로 아시아 해운시장 주도권을 쥐고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대세인 환경규제는 결국 아시아시장에도 도입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주도적인 친환경 해운정책을 통해 패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글로벌 해운시장 동향과 인트라선사들의 상황을 살펴보고 과당경쟁에 내몰린 선사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본다.<편집자 주>

- 세계 경기 둔화로 해운시황 하락 본격화

코로나 엔데믹으로 인해 주요국 긴축 통화정책 유지 및 세계 경기 둔화 우려가 지속되면서 해운시황도 덩달아 하향세로 접어들었다.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에 따르면, 세계은행, OECD, IMF 등 세계 주요 경제기관들은 내년도 세계 경제성장률을 3% 하회하는 것으로 전망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인플레이션, 통화긴축, 금융시장 불안, 중국경제부진 등으로 올해에는 전년 대비 성장률이 하회하고, 내년도에는 신흥국 주도로 그나마 소폭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컨테이너선 운임지수는 평균 982p를 기록했다. 지난해 평균 3,442p 대비 71% 하락했으나, 코로나 이전인 2019년 811p 대비 21% 상승한 수치이다.

주목할 점은 대형선사들의 선박재배치(근해 캐스캐이딩)도 급증했다는 것이다. 해운시황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글로벌 선사들이 원양항로의 공급을 조절하면서 코로나 이전과 같이 아시아 역내 항로에 선박투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북미시장의 8월 주간 공급량은 46만3,000TEU로, 지난 4월 운임 고점 대비 22.5% 축소됐고 유럽도 지난 3월까지 공급이 축소됐는데, 원양항로에서 철수된 선박들은 대부분 아시아 역내항로로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진공 관계자는 “글로벌 원양 선사들이 원양항로가 아닌 기타 항로에 선박 전배를 증가시키면서 전 항로에 선박 대형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북미·유럽항로에 대형선 투입으로 선박재배치의 확대는 대형사의 역내항로 진출이 확대되면서 인트라선사에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CNC 홈페이지.

- 선박재배치에 소형선 인도로 위기에 놓인 인트라 선사들

이 같이 시황하락에 따른 원양선사의 선박 재배치로 아시아 역내 항로 공급 압박이 더욱 증가되고 있다.

해진공 관계자는 “상위 20개 ‘컨’선사의 북미·유럽항로 비중이 줄어들면서 신규 인도 신조선박의 노선 투입까지 고려하면 최소 40만TEU 이상이 원양노선이 아닌 곳에 전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영국의 해운시장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아시아 역내 노선 공급량은 총 282만TEU에서 올해 9월 307만TEU로 8.3% 증가율을 보였다. 선박 평균 사이즈 역시 선대당 1,419TEU에서 1,472TEU로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인트라 선사 관계자는 “원양선사들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중동 등 연계항로에 중대형선 선박 전대와 신규 공급 및 계열사를 통한 아시아 역내 항로 진출 확대로 기존 항로를 운항하던 선사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형선사의 선박 전배 투입 외에, 소형선 신규 인도도 예정돼 있어 인트라선사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병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연구원은 “내년에 3,000TEU급 미만 선박이 약 199척, 41만TEU 가량 인도되는 것이 예정돼 있다”며, “이는 아시아 역내 항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종길 성결대 교수도 “현 아시아 역내 시장의 선박 재배치는 원양항로의 환경규제에 따른 대체선 투입으로 남는 선박을 환경규제를 받지 않는 아시아 역내 시장에 투입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며, “당분간 이같은 선박 전배 처리는 더 가속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 정책 부재에 속수무책 국내 인트라 선사들, 해수부는 ‘수수방관’

해운시황 하락으로 원양선사들의 선박 재배치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문제는 시황이 하락하면 원양선사들은 ‘아시아 시장 서비스 강화'라는 명분을 통해 잔여 선박을 인트라시장에 투입해 왔는데, 이 같은 현상은 시황 하락기만 되면 매번 반복됨에도 인트라선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자금력과 규모가 큰 선사들이 인트라시장에 선박을 투입하면서 상대적으로 작은 선사들이 과당경쟁에 내몰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 원양선사인 HMM도 지난달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 직기항 노선을 개설하고 기존 노선을 확대 개편하면서 4,600TEU급 선박을 대거 투입한 바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완전 개방 항로인 아시아 시장에 선박 투입을 강제할 방법도 없다보니 일각에서 ‘아우들 노는 곳에 형님들이 온다’는 비난도 있지만, HMM뿐만 아닌 글로벌 선사들도 인트라 시장에 선박 투입을 확장하고 있어 HMM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이 어느정도 예견됐음에도 해양수산부가 뚜렷한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어 답답함을 자아내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해 11월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해상운임의 불안정한 시황에 대응하기 위해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지만, 국내 인트라선사들을 위한 맞춤 정책은 전무하다.

당시 발표된 강화 방안에도 3,000억 원 규모의 중소선사 특별지원 패키지와 선주사업에 50척을 확보하고, 최대 1조 원 규모의 위기대응펀드를 마련하겠다고 밝혀 관련업계로부터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이 관계자는 “국내 해운정책이 원양선사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HMM이 정상화 반열에 올랐으면 이제는 인트라선사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인트라선사들은 경쟁에서 알아서 버티라는 식인 것 같다”며, “인트라선사들이 있어야 원양선사를 뒷받침해주는 것인데, 정책방향이 HMM에만 집중돼 있다보니 해수부도 HMM 매각 이후 정책 방향에 갈피를 못잡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그린 이니셔티브’ 전략으로 아시아 해운정책 주도해야

국내 인트라 선사들이 공룡 원양선사들의 몸집에 치여 자생능력을 잃기 전에 해수부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국내 선사들을 지킬 수 있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코로나 이전과 같이 인트라선사들의 위기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글로벌 선사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국내 인트라선사는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국내 해운 전문가들은 국내 인트라선사들을 지키기 위한 해법은 ‘그린 이니셔티브’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종길 교수는 “친환경, 탈탄소, 넷제로 등이 해운정책의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규제 지역인 아시아시장도 결국 환경규제가 확대 도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아시아시장에서 친환경 정책을 마련하는 ‘그린 이니셔티브’ 전략을 추진해 국내 인트라선사의 안정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탈탄소나 넷제로 등 선박 탄소배출 규제 등의 환경규제는 원양항로에만 국한돼 적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규제로 비규제지역인 아시아 역내시장에 규제대상 선박들이 투입돼 기존보다 더욱 심각하게 선박재배치가 진행되고 있다. 규제가 본격화되는 내년부터는 규제선박 투입이 올해보다 훨씬 더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교수는 환경규제를 통한 공급조절과 함께 나아가 국내에서 아시아 해운시장의 주도권을 쥐고갈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교수는 “유럽에서 도입했던 형태로 우선 신규 투입 선박에 대해 적합성·비적합성을 구분해 투입하게 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선사들이 다니는 한일항로에서 시범적으로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일항로 이후에는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대만까지 우선적 협력을 통해 친환경 정책을 지원함으로써 중국선사의 시장교란행위를 막는 등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며, “이 같은 그린 이니셔티브 전략이라는 환경정책을 활용해 정부가 시장에 일부 관여하고 친환경 선박 공급 명분을 확보하면서 항만과 배후부지의 환경개선 및 친환경 선박 조기 정착과 선원부족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만약, 이 같은 정책이 실패하더라도 세계적으로 환경규제가 지속적으로 확대 적용되고 있는 현 추세에 비춰보면 결국 도입될 수 밖에 없는 정책인 만큼 이를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교수는 “정책 참여선사에 대해 확실한 인센티브를 보장하고 불참한 선사에 대해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 있도록 정부가 가이드라인를 만들어 끌고 가야 한다”며, “피할수 없는 환경규제의 선제적 도입은 친환경 선박 건조에 대한 조선산업 발전과 내부적으로는 인트라시장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등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 도입 후 흐지부지되더라도 추후 다른 아시아권 국가에서 환경규제 도입시 해수부 정책을 활용할 수도 있는 등 우리나라가 아시아시장에서 해운 주도권을 쥐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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