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양종서 객원논설위원 ·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위원] ‘경쟁’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운명적인 것이다. 인간만이 겪는 것도 아니고 자연계에 근원적으로 존재한다. 생존경쟁, 짝짓기 경쟁 등에 이르기까지 자연생태계에서는 동물뿐 아니라 식물까지도 겪어야하는 것이 바로 ‘경쟁’이다. 지구라는 한정된 자원 안에서 각 생명체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함인데 이를 피할 수만은 없다.

경쟁은 이에 참여하는 주체들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모두들 피하고 싶어 하지만 경쟁에 참여하면서 나날이 향상되는 경쟁력은 이에 따르는 보상이며 선물이다. 2차대전 이후의 체제경쟁에서 자본주의 진영이 승리한 원동력이 ‘경쟁’이라는 요소임은 누구나가 잘 아는 사실이다. 경제주체들 간 경쟁을 유도한 자본주의 진영이 계획경제를 추구한 사회주의 진영을 힘에서 압도하게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래서 경쟁자, 특히 라이벌의 존재는 상호 간의 경쟁 속에서 모든 경쟁자를 승리자로 만들기도 한다. 축구에서 레알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세계 클럽축구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된 것,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모두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 등이 그러하다. 우리 조선산업의 강력한 경쟁력도 둘도 아니고 셋이나 되는 라이벌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조선소가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는 사실 때문에 서로 치열하게 살았고, 그래서 지금은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부동의 전세계 1, 2,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경쟁국인 중국에도 라이벌 조선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의 강력한 지원이 뒷받침된 중국의 경쟁강도는 이보다 약할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른 경쟁력 향상도 우리만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우리 고유의 문화 때문에 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라이벌 관계가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어부지리(漁父之利)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에서 보듯이 지나친 경쟁은 경쟁자 모두를 실패하게 만들고 제3자의 이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선의의 경쟁보다도 상대를 죽이고 보자는 출혈경쟁이 가져올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적 결과는 경쟁자들이 상호 경쟁할 때와 협력할 때를 구분하지 못해 생기는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경쟁도 때로는 협력이 필요한 법이다. 특히 위기시에는 더욱 그러하다. 중국근현대사에서의 국공합작은 철천지원수끼리도 위기 앞에서는 이러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가깝게는 지난해 초부터 감행된 컨테이너선의 slow steaming도 해운사들의 암묵적 협력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화주들의 불만이 많았지만 모든 해운사들의 암묵적인 규칙 준수로 결국 운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지금 우리 조선산업도 상호간의 경쟁보다는 협력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때로 보인다. 작년도 신조선시장에서 국내 대형 3사간의 지나친 경쟁으로 저가수주가 많이 이뤄졌다는 루머가 있었다. 물론 루머가 사실이더라도 경쟁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우리나라 조선소들이 그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해양설비 시장과는 달리 상선 시장은 극심한 침체이며 이는 전체의 위기라는 사실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 상호간의 협력이 담합의 수준이 되어서는 곤란하지만 지나친 출혈 경쟁은 자제하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조선소들은 경쟁과 협력의 강도 조절에 있어서 잘해왔던 것으로 믿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경쟁을 벌여 왔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 협력하며 끌어왔던 것이다. 최근에 많이 늘어났지만 과거에 조선공학과는 전국 대학에 10개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동문관계로 얽힌 조선산업 종사자들끼리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이 대국인 중국보다 좁은 사회인 한국이 안고 있는 강점 중 하나가 아닐까?

지금 조선업계는 프랑스의 GTT가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 때문에 시끄럽다. 거액을 주고 사들여봤자 이익은 없고, 그렇다고 돈 많은 중국으로 넘어갈 경우 우리가 장악한 LNG선 시장을 중국이 위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필이면 재무적으로도 여유가 없는 불황기에 이러한 일이 생겨 곤란은 더욱 더 큰 것 같다. 이 문제의 답은 아직 알 수 없다. 이 문제는 조선업계가 모여서 풀어야 할 문제이다. 라이벌 의식은 배제하고 젊은 시절 모여서 같이 놀고 술마시고 같이 숙제하던 친구들의 마음으로 풀어야 할 것 같다.

*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일뿐 필자가 소속된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밝혀드립니다.

[양종서 박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 학사 (1990)
-서울대학교 조선공학과 석사 (1992)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기술경영 전공 박사 (공학박사 2005)
- 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조선산업, 자동차산업 등 담당)
- 現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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