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일감몰아주기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제도망을 벗어나 친족 기업간 서로 일감을 교환하는 일감 스와핑 방지대책도 같이 논의를 해야 합니다.”

현대중공업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서로 일감을 교환하는 일명 ‘일감 스와핑’에 대해 최근 만난 업계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조선소를 운영하는 현대중공업그룹은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의 물량을 형제그룹인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에 맡겼다. 이 물량은 최근까지 현대상선에서 실어날랐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현대글로비스는 그룹 계열사의 대량화물 해상운송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조항이 붙은 국적선사로 해상면허를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제그룹이기는 하지만 현대오일뱅크의 물량을 현대글로비스가 수송하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대글로비스가 수송할 선박을 현대중공업의 계열사에서 발주를 하면 이야기가 틀려진다. 또 해당선박에 대한 금융조달을 현대중공업의 또다른 계열사에서 담당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오일뱅크 물량을 수송할 선박을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삼호조선소에 발주를 했다. 해당 선박에 대한 선박금융은 100% 선박펀드로 조달하면서 현대중공업의 또다른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에서 선박펀드 투자자를 모집했다.

게다가 선박펀드를 구성한 국제선박투자운용 역시 과거 씨앤그룹이 대주주로 있던 선박금융을 다른 곳에서 인수하면서 사명을 변경했지만, 사실상 하이투자증권이 지분을 인수했다고 의혹을 받고 있는 회사이다.

국제선박투자운용은 지난달 국토해양부에 현대글로비스가 사용할 선박에 대한 선박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하이골드오션 11호 국제 선박투자회사’를 인가받았다.

해당 펀드는 현대삼호중공업에 발주한 VLCC 4척에 대해 약 4,000억 원 규모로 사모펀드를 조성, 10년간 BBC구조로 현대글로비스에 용선해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해당 펀드의 대형 투자자는 정부기관인 국민연금으로,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신용도만 보고 저금리로 펀드금액의 대부분인 4,000억 원 가까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25일 들어설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이 ‘경제민주화’로,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뿌리뽑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정부기관인 국민연금이 일감몰아주기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현대글로비스에 거의 100% 가까이 투자했다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형제그룹에 대한 제제보다는 대기업끼리 서로 일감을 몰아주는 일명 ‘스와핑’을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는 내부거래로 자식에게 편법증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이번 현대오일뱅크 물량을 받으면서 외부거래 비율을 늘리게됐다”며 “현대중공업역시 조선업계 불황으로 힘든 상황에 모그룹의 계열사를 통해 글로비스를 한번 거쳐 그룹의 여러 계열사가 일감을 받게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강력한 법적 제제도 필요하지만,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끼리 스와핑을 하는 등의 행위에 대한 대비책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차그룹 간 이러한 거래는 사실 현행법상 제제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물론 자체적으로 좋은 의도로 서로 상생하자는 의미에서 이번 계약을 체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쪽은 이번 계약으로 여러 계열사가 일감을 얻었으며, 다른 한쪽은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있는 내부거래 비율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상생’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달 말 들어서는 박근혜 정부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서라면 이번 사례처럼 대기업의 ‘일감 스와핑’에 대해 강력한 대응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래야 전문 물류기업과 중소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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