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학소 객원 논설위원, 現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한 나라의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상당기간 국가 차원의 특별한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또 해당 업계의 각고의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의 철강산업이 그랬고, 일본의 자동차산업, 미국의 IT산업이 그랬다.

그렇다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해운강국들은 어느 나라일까. 세계해운시황이 오늘날과 같이 5년에 가까운 장기불황에 빠지기 전에는 어느 나라가 진정한 해운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인지 명확한 증거를 찾을 기회가 없었다. 막연하게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등 선박량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나라들이 해운강국인 것으로 판단하고 더불어 선박량 확보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5위의 해운강국이라고 자부해 왔다.

하지만, 2008년부터 최악의 장기 해운불황을 겪으면서 해운강국에 대한 개념이 잘못됐음을 알게 됐다. 전술한 국가들의 경우는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드는 반면, 우리나라를 해운강국의 반열에 올려놓고 생각한다는 것이 상당한 무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해운강국들의 경우 지난 5년간 불황으로 퇴출된 기업수가 극소수에 불과했다. 미국이 5개, 일본 1개, 네덜란드 1개, 그리스 1개가 파산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고, 구조조정을 겪은 기업들이 약간 수 확인될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무려 100여 개 회사가 문을 닫거나 손바뀜 현상을 겪었다. 더 놀라운 일은 선진해운국들은 강력한 국가 지원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가동해 끊임없이 자국의 해운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해운불황과 관련해 국가적 지원시스템의 불비로 인해 거의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 비해 세계적인 해운선진국들은 무섭게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지원시스템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2008년 이후 제공된 지원내역을 열거해 보면 신용보증, 수출신용제공, 구제금융지원, 신용보증, 신용대출, 무담보 사채투자, 채무조정, 부채매입, 운전자금지원, 파트너쉽 출자, 우선주 발행, 선박재생펀드, 융자제도, 대출제공, 전략적 금융협력 등등 그 이름을 다 거론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들이 왜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강력한 지원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운강국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달고 싶지도 않다.

이들 해운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통과 경험, 지혜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고 있다. 이들 국가들이 역사상 세계최악의 해운불황에서도 끄떡없이 지속적으로 자국의 해운기업을 지원할 수 있는 저력이 놀라울 뿐이다. 이러한 국가들은 그 동안 자국의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해운산업에 대한 국가지원시스템을 이미 확립해 왔다. 더 큰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국가는 중국이다. 유럽국가들의 경우 이미 금융지원 시스템을 충분히 가동해 재원이 소모됐기 때문에 더 이상의 금융을 지원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다르다. 중국은 풍부한 외화자산과 시중자금을 바탕으로 해 지속적으로 조선소와 해운기업의 선박건조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의 장기불황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세계경제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금년에도 세계경제회복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선복량 감축이라도 있어야 세계해운불황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운강대국들의 강력한 지원시스템으로 인해 신조선이 지속적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해운불황의 회복이 한없이 지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지적이 이곳 저곳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해양수산부의 부활을 통해 해양산업, 특히 해운산업에 대한 의욕적인 지원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의 해운산업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불황을 극복하고 세계해운시장의 강자로서 변신해야 한다. 보다 장기적인 입장에서 강력한 국가적인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며 해운업계의 반성과 협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이 어려운 최악의 불황사태를 이겨내고 영원히 해운강국으로 살아 남기위해서는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에 대해 자기성찰을 통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과제는 공멸에 가까운 현재의 위기를 넘겨야 한다. 당장의 벌어지고 있는 운영자금의 압박과 부채상환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금융권의 협력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정부와 업계가 합심해 금융권을 설득해야 한다. 다음으로 해운산업에서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활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해운업에 경험과 노하우를 충분히 습득한 해운업계 원로와 대학자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원로 전문가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전략과 해운기업의 상업적인 전술에 잘 활용되고 있지 않다. 만일 해운계의 원로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해운산업의 현장에 잘 반영돼 활용됐더라면 2005년부터 2008년까지의 호황기에 우리나라는 선박을 고가에 매각해 엄청난 자금을 축적했다가 오늘과 같은 최악의 해운시황에서 많은 신조선을 헐값에 사들여 선령도 개선하고 경쟁력도 제고해 강력한 해운강국으로 거듭나 있을 것이다. 또 고가용선의 조기 반선을 통해 엄청난 비용절감을 달성하고 저렴한 용선료를 가지고 선대를 재편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해운불황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국가적인 해운산업 지원시스템의 구축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주지하고 있다시피 해운산업은 점점 경기순환의 사이클이 짧아지고 변화의 폭이 심해지고 있다. 따라서 해운기업에서는 부지불식간에 해운불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위험에 빠지게 되고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해운경기변동으로 인한 위험성을 강력하게 지원할 수 있는 국가적인 시스템의 구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은 있으나, 현재 선박금융과 관련된 법률안이 제출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선박금융공사든 해양금융공사든 신속한 설립을 통해 빈사상태에 빠져있는 해운기업들의 숨통을 열어 주어야 한다. 아울러 해운보증기금제도를 도입해 우리나라의 국가적 해운지원시스템이 기존의 해운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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