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해운업계가 전용선 사업부문을 사모펀드나 외국계 선사에 매각할 바에는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입규제를 완화해 해운사를 키우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최근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입규제를 완화시킬 움직임이 이는 것과 관련, 얼마전 한 금융기관 관계자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국내 대량화주가 해운업에 진출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것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종전과 다르게 이번 진입규제 완화는 대량화주들보다는 사모펀드 투자자들이 ‘M&A 활성화’란 명목 하에 그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현재 시장 상황을 살펴보면 이 관계자의 주장이 아예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조만간 시장에 나올 팬오션을 인수할만한 업체로 해외 선사가 거론되고 있는데다, 국내 양대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전용선 부문이 사모펀드에 매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관계자는 외국기업에 줄 바에야 탄탄한 국내 기업이 인수하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해운업계는 일부 금융권에서 주장하고 있는 이러한 내용에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왜 일까. 이들 금융권의 주장이 국부유출 우려를 가장해 제 이익만을 챙기기 위한 얄팍한 발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해운업체 관계자는 “한진해운이나 현대상선의 전용선 부문을 인수한 사모펀드사에서 수년 후 대량화주에게 이를 비싼 값에 넘기기 위해 진입규제를 완화해 달라고 하는 것”이라며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출에 대해 규제를 지속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한종길 한국해운물류학회 회장은 “전세계적인 추세가 전문화, 아웃소싱, 3자물류인데, 이중 가장 특화된 분야가 해운업”이라며, “과거 50~60년 대에 메이저 석유회사들도 다들 탱커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이유가 그들은 석유를 공급하는 회사이지 실어나르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대량화주든 사모펀드든 해운업체를 인수 하더라도 과거 사례로 살펴볼 때, 해운산업을 장치산업으로 보지 않고 금융산업으로 보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며, “현재 흑자내는 기업으로 불리는 KSS해운, 장금상선, 폴라리스쉬핑도 경영자가 해운전문가이지 금융전문가는 아니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대량화주들은 그동안 해운업 진출에 대한 이유로 ‘물류비 절감’과 ‘자사 물량 노출에 따른 정보 유출’ 등을 들어왔다.

시장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국내 대표적 ‘대량화주’인 포스코의 연간 물류비가 약 2조 원으로 추정된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 입장에서 2조 원 가량의 물류비를 다시 그룹으로 흡수시키면, 영업이익을 보다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해운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이 관계자의 말이 포스코가 해운업에 진출하려는 모든 이유가 될 순 없을 것이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포스코 입장에서 보면 물류비를 절감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싶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봤을 때, 국내 해운산업이 세계 5위의 해운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포스코와 같은 대량 화주들의 물량을 해운업체가 수송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는 곧 그룹 물량의 일부를 국내 선사들에게 맡겼기 때문에 이 같은 경쟁력을 갖고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아울러, 대량화주들이 주장하는 두 번째 이유인 ‘물량 노출에 따른 정보 유출’ 부문도 작금의 글로벌 환경 속에서는 문제될 것이 못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세계적 추세가 전문 해운(물류)기업에 맡기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보유출 문제는 해운(물류)기업이 그들만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객사의 정보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면 여러 업체에 물량을 분산시키는 현 시스템을 유지하면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해운업계는 해운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대량화주들의 해운업 진출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경계심은 쉽사리 풀리지 않을 듯 하다.

물론 해운업계도 지금까지 잘했다고 볼수만은 없다. 그동안 해운업계가 국내 해운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고 우리나라가 세계 5위 해운강국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곧 정부와 대량화주들이 물량의 일부 또는 전부를 국적선사를 통해 수송하도록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해운업계의 사회환원은 전무하다. 특히, 호황기에는 해운사들의 뻣뻣함은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도 종종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러한 점에서 해운업계의 자기성찰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대량화주의 해운업 진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는 국가 해운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선사, 대량화주, 정부 등 3자가 만나 끊임없이 협의해야 할 사안이다. 일부 금융권(사모펀드)에서의 주장과 같이 M&A 활성화를 위한 해운시장 규제완화는 절대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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