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업계, 롯데·농협 시장 진출 움직임에 ‘발칵’

 
[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농협과 롯데의 택배시장 진출설로 택배업계가 연일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기존 민영택배업체들은 물론, 우정사업본부까지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택배시장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재력을 갖춘 강력한 복병이 하나도 아닌 둘이 한꺼번에 들어온다고 하니 기존 업체들은 걱정이 좀 많은 듯합니다. 농협과 롯데의 진출은 20여년 만에 겨우 안정화 된 시장에 회오리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농협과 롯데, 이들 두 기업의 택배시장 진출은 단순히 ‘설(說)’으로만 그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좀 더 나아간다면 현 시점에서 이들의 시장 진출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팩트(Fact)는 두 가지로 압축되지만, 물밑에서 움직이는 이들의 움직임은 드러난 것 보다 훨씬 세밀하면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의 시장진출을 예상하는 팩트로는, 농협의 경우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달 간부회의에서 농협의 택배사업진출을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가, 롯데는 현대로지스틱스 주식을 35% 확보함으로써 1대 주주가 된 점입니다. 공교롭게도 양 사는 수년 전부터 택배시장 진출에 공을 들여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 이들 두 기업은 택배시장 진출을 묻는 질문에는 “검토 중”(농협)이라거나, “그룹물량 처리를 위한 물류회사 확보 차원”(롯데)이라는 정도로만 대응하고 있습니다.

업계 분위기는 어떨까요. 업계는 이들 두 기업의 시장 진출에 상당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지난 십 수 년 간 단가인하 싸움으로 피폐해진 시장이 이제 겨우 안정화 단계에 이르렀는데, 또 다시 전쟁을 치르게 생겼으니 참으로 답답하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롯데의 시장진출은 어쩔 수 없지만, 공기업 성격이 강한 농협만큼은 시장 진출을 자제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심 농협과 롯데가 시장에 진출하지 않길 바라고 있지만, 현실은 이들 기존 업체와의 바람과는 반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 농협, 롯데가 택배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은

현재 두 기업의 시장 진출은 사실상 확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선 롯데그룹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롯데그룹은 최근 롯데쇼핑을 통해 총 1,250억 원을 투자해 오릭스가 보유하고 있는 현대로지스틱스 인수SPC(특수목적법인) 주식 70%의 절반인 35%를 확보했습니다. 이로써 롯데는 현대로지스틱스의 최대주주로 거듭나게 됐습니다.

롯데측은 “택배시장 진출이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현대로지스틱스 인수SPC(이하 SPC)는 지난달 말까지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하기 위한 인수팀의 실사를 마무리 하고, 잔금을 치를 예정이었지만, 약 1개월 가량 연장됐습니다. 오릭스측의 인수자금 문제가 금주 중 마무리 되면 내주 중 실사작업을 마무리하고 잔금을 치를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경우, 공식적으로 현대로지스틱스의 경영권은 현대그룹이 아닌 SPC로 넘어가게 됩니다.

롯데는 SPC 주식 35%를 인수하면서 오릭스측에 투자금 회수시 우선적으로 매수할 수 있는 권리도 받아냈습니다.

롯데는 지난 10년 간 기회만 오면 택배시장에 진출하려 했습니다. 현재는 택배시장 점유율 2위 업체의 1대 주주가 됐으며, 추후 공동 대주주가 갖고 있는 나머지 주식도 매수할 수 있는 권리까지 갖고 있는 상태입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오릭스가 롯데측에 SPC의 주식을 넘길 시점으로, 짧으면 1년, 길어도 3년을 넘기진 않을 것이라는데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황상 오릭스가 내주 중 잔금을 치르면 현대로지스틱스의 경영권은 롯데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택배시장 진출이 아니다”는 롯데측 설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무튼 현재 롯데의 현대로지스틱스 인수와 관련, 두 가지 설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 경영진을 유지한 채 2년 후 본격 경영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과, ‘잔금을 치른 후 당장 내달부터 시작할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맞는지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면 알게 될 것이지만, 롯데의 택배시장 진출은 사실상 이미 정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현대로지스틱스는 택배업계 2위 업체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총 9,323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영업이익은 192억 원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이 회사에서 택배부문이 갖는 비중은 전체 사업의 43% 정도로 가장 높습니다. 지난해 택배부문 영업이익은 약 90억 원입니다.

또 다른 당사자인 농협도 내부적으로는 시장 진출이 확정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필 장관의 지시 이후, 농협은 농축산물 택배요금을 민간업체 수준보다 낮추는 방식으로 택배 시장 진출을 고려중이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총 1,000억 원을 투자해 기존 중소택배업체를 인수한 후, 시설을 확대해 농축산물 배송에 만전을 기한다는 것입니다.

농협은 기존 민영업계의 반발을 우려해서인지, 택배사업에 나서더라도 일단 농축산물 배송에 한정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문제는 기존 업체의 반발과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시장진출을 확정했지만,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물밑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협은 지난 2007년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 만큼 물류에 관심을 보여 왔으며, 2010년부터 택배시장에 상당한 애착을 왔습니다. 결국 이듬해인 2011년에는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택배업 진출 의사를 밝혔지만, 여러 이유로 최종 보류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관이 직접 “시장 진출을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일부 세부진출 방안까지 제시하는 등 예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농협의 인수대상 업체로는 K사가 유력한 가운데, D사와 Y사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 택배시장에 미치는 영향

그렇다면 이들 두 기업이 진출하면 택배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아마도 지난 20여 년간 유지돼 온 시장 판도가 뒤바뀔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경쟁자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들 두 기업 모두 자본력이 만만치 않은데다, 자체 발생물량이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농협과 롯데, 두 기업의 자본력은 딱히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굴지의 기업입니다. 물량적인 측면에서 볼 때, 농협은 전국 각지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농축산물에 유통업체인 하나로마트까지 보유하고 있는 등 자체 발생물량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롯데그룹도 롯데홈쇼핑,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등 국내 최고 유통전문기업이라는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물동량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는 두 기업 모두 택배사업이 성공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자본+물량)을 모두 갖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CJ대한통운과 통합하기 전, CJ GLS는 지난 2000년 택배시장 진출 이후 그룹계열사인 CJ홈쇼핑(現 CJ오쇼핑) 물량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며 10년 만에 업계 2위까지 치고 올라 왔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춰보면 자본력과 자체 물량이 택배시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농협은 자산 290조 원에 계열사 44개를 거느린 초대형 기업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준 공기업인 농협의 시장진출이 가시화 되면서 당장 발 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민영택배사가 아닌 국영기업인 우체국택배를 운영하는 우정사업본부입니다.

그동안 산간벽지의 농축산물은 사실상 우체국택배가 전담해오다시피 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농협이 택배시장에 뛰어들면 가장 먼저 우체국택배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정사업본부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협이 시장에 진출한다면 전국 농축산물 물량이 넘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당장 상당한 손실이 예상됩니다. 전체 물량 중 농축산 물량이 얼마만큼 차지하는지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상당부문 차지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에 걱정입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의 말입니다.

그렇다고 우정사업본부가 농협의 시장진출에 대놓고 반대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민영기업으로부터 수많은 공격을 받아온 우체국이 준 공기업인 농협이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우정사업본부는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 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민영업계는 당장 농협이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농축산물 배송에 주력하고, 일반 택배물량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로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CJ대한통운, 한진, 현대로지스틱스 등 3사 공히 농축산물량이 전체의 2%도 채 되지 않습니다.(일부 중소업체의 경우, 이 보다 비중이 높은 곳도 있습니다.) 때문에 사업초기 농수산물 배송에 집중한다면 민영업계는 농협이 들어오든 말든 신경 쓸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농협이 사업을 안정화 시킨 이후입니다. 농협이 택배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적든 많든 이익을 내야만 합니다. 농협은 보다 싼 값에 농수산물을 안정적으로 배송하기 위해 시장에 진출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현재 단가보다 저렴하게 서비스를 한다고 했는데, 이는 곧 경영상으로는 ‘적자’를 의미합니다. 작금의 시장 단가가 거의 최저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농수산물을 가장 많이 배송하고 있는 우체국택배는 적자에 허덕이고 있으며, 업계 전체적으로도 택배단가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습니다. 박스당 평균단가는 2004년 3,146 원에서 10년이 지난 2013년에는 2,480 원으로 떨어진 상태입니다. 이는 업체 간 치열한 단가인하 경쟁에 따른 것입니다. 이 결과 지난해 중소택배업체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습니다. 로젠(영업이익 162억 원)을 제외한 동부익스프레스(188억 적자), 옐로우캡(89억 적자), KGB택배(42억 적자) 등 주요 중견업체들이 적자에 허덕였습니다. 대기업들도 적자를 보거나 영업이익률이 1~5% 수준에 그치는 등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나마 지난해 말부터 “단가 인상을 통해 택배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조금씩 시장이 안정화 돼 가고 있는 추세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농협이 단가를 더 떨어뜨려 택배사업에 뛰어든다면, 또 다시 치열한 단가인하 경쟁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농협은 현재보다 낮은 단가에서도 충분히 안정적인 배송을 할 수 있는 자본력이 있겠지만, 매년 적자를 보면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붇기’식 형태에서 벗어나려면 일반 택배시장으로 외연을 확대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곧 기존 업체와의 단가인하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롯데가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농협은 경우가 다릅니다. 우리가 국영기업인 우체국 때문에 그렇게 고생했는데, 이제 좀 시장이 안정되려고 하니, 준 공기업인 농협이 들어온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한 것입니다. 물론, 농협이 들어온다고 해서 시장점유율 순위가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구조적으로 불공정한 게임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막강한 유통망과 물량을 보유하고 있는 롯데가 들어오는 것만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농협까지 이에 가세한다니 골치가 지끈거립니다.” 최근 만난 A사 임원의 말에서 기존 업체의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당장 민영업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기업은 농협이 아닌 롯데입니다. 롯데는 현재 시장점유율 2위인 현대로지스틱스의 물량 위에 자사 계열사(롯데홈쇼핑, 롯데마트, 롯데백화점, 롯데몰, 세븐일레븐 등)의 물량까지 밀어준다면 당장 1위인 CJ대한통운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오게 됩니다. 물론 롯데는 ‘계열사 간 물량 밀어주기’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럽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꼬리표가 무서워 롯데가 점유율 확대에 소극적으로 경영을 펼쳐 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현재 CJ대한통운의 시장점유율은 약 34%로 수준으로, 2위권인 현대로지스틱스와 한진(12%)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위와 2위권 간 간격이 워낙 많이 나기 때문에 최근에는 출혈경쟁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롯데와 농협이 시장에 진출하면 이 같이 안정적인 구도는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택배시장은 2000년대 중후반 대한통운, 한진, 현대택배, CJ GLS 등 이른바 ‘빅 4사’가 경쟁할 때, 단가가 급전직하 했습니다.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2004년부터 2009년까지 평균 5년 간 매년 평균 124 원씩 떨어졌습니다.

물론, 롯데와 농협이 가격을 인하해 시장에 들어온다고 해도 이렇게 평균단가가 100 원 이상 떨어지진 않을 것입니다. 다만, 현재의 극심한 저단가시장에서 단가가 50~100 원만 떨어진다고 하면 모든 택배업체가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은 매우 높아집니다. 우려스럽게도 롯데와 농협 모두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면, 이 같은 수준으로 단가를 떨어뜨릴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점유율 싸움을 벌인다면 택배시장은 2000년대 중후반으로 돌아가 또다시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자금력과 물량을 겸비한 새로운 업체가 시장에 들어오면 반드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써 왔다는 것입니다. 국내 택배시장은 현재 ‘폭풍전야’입니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