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채무는 그대로 둔 채, 회사 수 줄이는데만 급급

- 日 산업체 살리는 장기플랜 중점에 반해 韓은행 구제만 초점
- 韓 해운합리화, 대부분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
- 현 해운구조조정, 비전문가인 금융권 주도 방식 탈피해야

[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일반적으로 해운은 짧은 호황, 긴 불황이 반복되는 업종이다. 호황과 불황을 오가면서 얻는 노하우를 통해 선사를 경영하는 것이다. 해운업체 사이에서도 ‘지금은 어렵지만 시황이 뜨면 한방이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해운산업이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크게 3번의 불황을 겪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을 이끌어 냈던 오일쇼크, 두 번째는 IMF, 세 번째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발발된 금융위기다. 이 세가지는 ‘금융 이벤트’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해운업 특성이 자본집약적이고 국제금융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국제 금융 통화인 달러로 거래하고 달러로 배를 짓기 때문에 금융 이벤트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다. 최근 금융위기 이후 해운시황이 회복되지 못하면서 업계가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와 달리 조선기술의 발달로 불황과 호황의 사이클이 길어진 탓도 있지만, 위기를 해결해 줄만한 정책이 부재했던 탓도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한 해운 전문가는 “위기는 반복되는데 정책을 해야 할 해양수산부가 일이 터지면 대책이나 내놓고 있으니 제대로 되겠냐”고 반문하고는, “해운위기는 원래 계속 반복되는 것인데 해수부가 설립된 후 한 차례 위기를 겪었는데도 뚜렷한 정책이 없으니 업계가 이 정도 버티는 것도 대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본지는 반복되는 해운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과거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각각 진행했던 해운산업 합리화 정책을 비교해보고 위기 극복 방안을 모색해 봤다. <편집자 주>

▲ 두양상선 창립총회. 해운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군소선사들이 모여 설립한 두양상선은 기존 채무액은 그대로 둔채 상환기한만 늘려 회사가 살아나지 못하고 몇년전부터 화의의 길을 걷고 있다.

- 항로별 정리로 선사 수 줄이는데만 급급, 선사별 성공·실패 엇갈려

합리화 참여 선사들 중 두양상선과 KSS해운은 여러 개의 회사를 합쳐 하나의 신설법인으로 출범된 케이스다. 두양상선은 쌍용해운, 아진해운, 현대해운(현 현대해운과 다른 업체), 태영상선, 한림해운, 한양해운 등이 합쳐 만들어졌고 KSS해운은 한국케미컬해운, 미원통상(현 대상), 일우해운 등을 통합해 출범했다.

해운산업 합리화 당시 두양상선 설립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두양상선은 1984년 7월에 설립됐는데 당초 들어오기로 했던 삼미해운은 하루전에 틀어져서 후에 범양상선과 통합됐고 태영상선도 한일사업부를 남긴채 동남아 벌크 1척만 넘겼다”며, “현재 내항에서만 운항하는 쌍용해운도 원양사업부만 두양에 넘기고 1년여 후 통합에 빠졌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선박 척수에 따라 지분구조가 생기다보니 초창기에는 가장 많은 선박을 투입했던 쌍용해운이 대표직을 맡다 1년 후 내항쪽 사업부문을 재개해 두양에서 빠지면서 그 다음으로 많은 선박을 투입했던 아진해운에서 대표를 맡게 되기도 했었다”며, “문제는 선박인데 선박은 그대로 두고 회사들만 비슷한 선사끼리 묶어버리는 통에 결국 지금의 두양상선이 됐다”고 설명했다.

KSS해운의 경우는 합리화정책에 참여했던 타 선사들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였다. 케미컬선을 가지고 있던 한국케미컬해운과 냉동운반선을 보유하고 있던 일우해운, 조미료인 미원 제조 후 남는 사탕수수 잔해를 해상에 처리하기 위한 선박을 보유했던 미원통상이 하나로 합쳐졌다. 특수한 선박들, 다시 말해 벌크선도 컨테이너선도 아닌 그룹에 끼워넣기 애매한 선박들만 남아 뭉친 곳이었다. ‘한국특수선’이라는 사명조차도 당시 해운항만청(현 해양수산부) 담당자가 만들어줬다는 전언이다.

KSS해운의 산업합리화를 지켜봐왔던 한 관계자는 “설립 초창기에는 한 사무실에 미원 책상 따로 일우 책상 따로, 케미컬해운 책상 따로 있고 심지어 경리직원까지 따로 있을 정도로 웃기는 상황이 빚어졌다”며, “그러다 미원은 해양폐기물 규제가 심해지면서 자사 보유 선박들이 골칫덩이가 되기도 했었던 탓에 선박만 매각하고 일찌감치 빠졌다”고 전했다.

이어 “제일 부실이 심각했던 곳은 일우통상이었는데 여기는 원래 제3공화국 시절 5·16 군사정변에 참여했던 해군사관학교 출신들이 만든 회사라 3공 시절까지는 화물을 독점으로 운항해왔었고 그러면서 회사 내부에 횡령 등이 비일비재하지 않았겠냐”고 반문하고는, “정부가 바뀌면서 더 이상 독점구조도 지속하기 어려운데다 부실상황에 대해 정치권에서 해결해줄 인맥도 없고 컨테이너선이 발달해 냉동운반선이 사라지는 시점이라 결국 남은 선박을 케미컬해운에 넘기고 빠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출범 방식은 비슷했던 양사의 현 상황은 엇갈린다. 두양상선은 몇년전 화의의 길을, KSS해운은 불황에도 꾸준히 흑자를 내는 탄탄한 기업의 길을 가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두양상선은 합리화에도 이후 회복되지 못한 케이스고 KSS해운의 경우는 합리화 정책의 수혜잔데, 이 회사 외에 다른 특수선 시장을 진입한 선사가 없었던데다 회사 자체에서도 넘겨받은 선박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영업을 했었던 탓에 지금까지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상선도 합리화 정책의 수혜자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당시 미주정기항로에 진입하고 싶어했던 현대상선은 이 정책으로 고려해운에게서 미주항로를 넘겨받게 됐다. 고려해운은 현대상선에게 미주항로를 넘겨주고 회사명을 신고려해운으로 변경했다가 1990년대에 다시 고려해운으로 바꿨다. 선주협회 50년사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고려해운을 인수해 150만t의 선박을 보유함으로써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국적대형선사가 됐다고 전했다.

해당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측에서 미주항로를 하고 싶어했지만 진입이 어려워 실패했는데 합리화 계획을 통해 거의 고려해운에서 뺏다시피해서 항로를 가져갔다”며, “지금으로서는 꿈도 못꿀일이지만, 당시에는 정경유착이 심할때라 가능했던 것”이라고 회자했다.

▲ 고려해운에게서 미주항로를 얻은 현대상선은 총 150만t의 선복을 보유하면서 세계에서도손꼽히는 국적대형선사가 됐다. 사진은 현대상선이 인수한 미주항로 풀컨테이너선 퍼시픽 브릿지호.

이어 “고려해운은 이 때문에 멀쩡한 미주항로를 넘겨주면서 손해를 봤지만, 현대상선은 염원하던 미주항로를 가질 수 있게 됐다”며, “당시 합리화 정책에 불만이 많았는데 현대상선은 이 정책에서 최고 수혜자가 됐다”고 전했다.

-다수 해운업체, 韓 해운합리화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

2년여에 걸쳐 마무리됐던 해운산업 합리화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미래지향적이었던 일본 해운집약정책에 비해 우리나라는 과거청산에 주력했다는 평이다.

일본의 경우, 조선과 해운 및 전반적인 산업과 국민소득을 연관시켜 큰 틀에서 장기플랜을 짠 결과물이었다면, 국내 해운합리화는 금융기관 구제 중심의 일시적 긴급피난 정책이었던 것이다.

한 교수는 “일본정책과 비교했을 때 다른점은 크게 3가지로 압축되는데, 일단 정책목표, 지원책, 결정과정이다”며, “정책목표가 일본은 미래지향적이었던데 반해 한국은 과거 청산에 주력했고 지원책 역시 일본은 재정지출에 빠른 이자 유예와 높은 이자에 대한 정부의 대납(보급), 비경제 선박 매입 등 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비경제 선박 매각보다 원리금 상환 유예와 면세혜택 정도라서 일시적인 재무제표상 영향을 줬을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었다”며, “정책결정 과정도 일본은 심의위라는 상설기관에서 장기에 걸쳐 종합적으로 다뤘고, 우리나라는 6개월만에 재경부 주도로 단기간에 결정하고 정부도 금융당국에서만 대부분 관여했다”고 덧붙였다.

정부 관계자도 “몇년전 해운합리화에 대해 정리하기 위해 당시 해운청에서 해당 작업을 관여했던 퇴직자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나, 재정부 주도로 진행해 별로 한 게 없어 도움을 주기 어렵다고 전달받았었다”고 전했다.

결국 너무나도 다른 양국의 정책으로 일본은 대형 3사가 해운업종의 업황에 따라 상쇄시킬수 있는 구조를 만들게 됐지만, 우리나라는 해운합리화를 겪고도 사라지거나 잦은 불황에도 대비하지 못해 사업 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이 됐다고 평했다. 특히, 거액의 선박매입으로 발생한 대출액을 축소하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상환하게 만들어놨던 탓에 합리화에 참여했던 선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이 부실선박에 대해 과감히 처분했던 것과 상당히 비교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단순하게 선사 수가 많아 금그어 놓고 여기까지는 원양, 여기까지는 동남아 이런식으로 정리를 하는데 문제는 거액의 선박매입에 따른 금융비용이었다”며, “은행들이 다칠까봐 거액의 빚은 남겨두고 선사 개수만 줄이는데 이게 도움이 됐겠냐”고 비판했다.

KSS해운의 산업합리화를 지켜봐왔던 관계자도 “부실선박 처분보다는 채무액을 그대로 두고 대신 이를 20~30년간 나눠 납부하도록 해놔 장부상에 문제가 없게끔 회계처리를 하는 등 단순하게 은행들의 면피용 정책이었다”며, “빚을 깍아준게 아니라 긴 시간동안 상환하게 구조를 만들어 놨는데 KSS해운도 불과 몇년전에야 해당 원리금을 다 상환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선주협회 50년사에는 “선사들의 과당경쟁 해소 및 비전문 해운업체의 해운업 정리, 기업 체질 강화, 부실기업이 과감히 정리돼 한국 해운에 대한 국제 공신력이 높아졌다”며, “통폐합에 따른 점소 및 인원 감축으로 경비절감이 가능해지고 비경제선의 과감한 처분과 경제선 확보로 한국상선대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해운산업 살리려면 금융권 주도 구조조정 탈피해야

▲ 한진해운이 보유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인 한진수호호. 지속되는 해운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진해운 역시 과거 해운산업 합리화때와 마찬가지로 비전문가인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주도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운산업 합리화의 실패 원인으로 가장 크게 지목되는 원인은 ‘금융당국 주도의 구조조정’이었다. 어찌보면 작금의 불황에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현재 정부당국인 해수부보다 금융위원회 주도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해운합리화 당시에는 컨테이너선에 대한 보급이 많지 않았던 탓에 벌크와 탱커 위주였지만, 국내 산업체들의 수출을 위해서는 원양 컨테이너선사는 필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돼 양대 선사에 대해 구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살려주겠다는 정부의 표면적인 발표와는 정반대로 양대선사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업체를 매각해 간신히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물론 벌크업계도 상황은 좋지 않다. 이 때문에 제2의 해운산업 합리화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대형선사인 A사 관계자는 “해운산업 합리화가 대형 이벤트인 오일쇼크 이후로 쏟아지는 선박 공급 과잉에서 비롯됐는데 지금이 그 시기가 아닌가 싶다”며, “정책적으로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측은 과거에 비해 덩치가 너무 커버린 해운업계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정부 관계자는 “1980년대에 비해 해운업체들이 선박 보유량도 많아지고 규모도 커졌는데 정부에서 그 정도의 예산이 어디있겠냐”고 반문하고는, “자율 시장 경제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새로운 선사들이 생겨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당연한 것인데 업계가 너무 정부 입만 쳐다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양대 ‘컨’선사에 대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정부당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해운원로는 “국내 벌크선사들은 시황 문제도 있지만 무리한 선박발주였기 때문에 정부에서 도와줄 이유는 없다”며, “양대선사들도 선박발주로 외형 확장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긴 하나, 어찌됐든 우리나라같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컨’선사는 국가 산업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돈이 우선인 금융권에 주도권을 맡기면 안된다”며, “다방면의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모여 위기 극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운업계 관계자도 “은행들이 해운 합리화때처럼 본인들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부실한 선사들을 살려주고 있다”며, “양대 선사에 대해서도 지원한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뚜렷한 방안도 없이 그저 자산만 매각해 이순간의 위기를 극복하라는 식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처럼 뚜렷한 산업 순환 구조를 만들어주지도 않고 그저 일시적 위기 극복을 위해 그것도 아무것도 모르는 금융당국에서 주도하다보니 해운업의 중요성도, 특성도 파악하지 못하고 돈만 밝히고 있다”며, “왜 머스크는 어렵지 않은데 국적선사들만 그러느냐고 따져묻기 전에 해수부나 선사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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