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이게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아니고 뭡니까?”

현대위아에 31억 원의 운송 위약금을 받아 챙기고, 실제로 계약 업무를 이행했던 중소해운중개업체(KLS)에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CJ대한통운을 두고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국내 대표적 물류업체인 CJ대한통운이 전설의 사기꾼인 봉이 김선달과 비유되고 있는 이유는 이렇다.

CJ대한통운은 2013년 현대위아로부터 크레인 1기 수송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계약을 이행할 해운중개업체로 KLS를 선정했다. CJ대한통운으로부터 해당 계약을 위탁받은 KLS는 화물을 수송할 선박을 확보하고 화물을 선박에 실을 수 있는 부두 고박부터 엔지니어링 업체를 물색하는 등 수송 준비를 진행했다.

KLS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은 우리에게 화물 운송에 대한 계약 전체를 위임한 채 업무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만 했을뿐, 크레인 수송에 대한 고박이나 엔지니어링 업체 섭외는 물론, 선박 배선까지 모두 KLS에서 진행했다”고 전했다.

CJ대한통운은 해운중개업 면허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일명 ‘통행세’만 받고 화물을 재위탁해 주는 일은 국내 해운물류업계에서 불법이 아니다. 때문에 이는 정상적 업무진행 프로세스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KLS가 해당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고박업체와 엔지니어링 업체, 선박 등을 물색해 계약을 한 이후, CJ대한통운이 원청업체인 현대위아와의 계약이 불발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CJ대한통운은 현대위아와의 업무진행 과정에서 차질이 빚어지자 KLS측에 선박 배선 취소와 재배선을 반복햇다. 이 와중에 KLS가 확보한 선박 배선 일자를 CJ대한통운측이 현대위아에 통보해 주지 않아 계약이 무산되면서 소송에 휘말렸다.

결과적으로 CJ대한통운은 원청업체인 현대위아와의 소송에서 승소해 운송취소 위약금으로 31억 원을 받아냈다. 비슷한 시점에 CJ대한통운과 KLS 간 별도로 벌인 소송에서 법원은 CJ대한통운이 KLS에 11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심은 2년에 걸쳐 진행됐으며, 이 과정에서 KLS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직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현대위아에서 돈을 받은 CJ대한통운은 KLS에 11억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 이미 지급했던 6억 원 마저 돌려달라며 항소를 제기했다.

CJ대한통운 입장에서는 항소심에서 지더라도 밑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CJ대한통운은 항소심에서 패소해 11억원을 지급하게 되더라도 20억 원을 벌어들이는 셈이 된다. 만약, KLS가 소송을 끝까지 진행하지 못하고 중간에 파산이라도 난다면 CJ대한통운은 현대위아가 준 31억 원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어떻게 벌어질 수 있을까. 업계 전문가는 “CJ대한통운이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중간에서 ‘해운중개업’이라는 업종을 활용해 중간 수수료를 상당히 남기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데다, 계약서 내용을 수시로 변경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같은 물품 운송을 놓고 CJ대한통운과 현대위아, CJ대한통운과 KLS측의 위약금이 크게 차이를 보이는 것은 계약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KLS에서 근무했던 관계자는 “KLS에서는 계약 변경에 따른 위약금 규정을 지속적으로 계약서에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CJ대한통운측이 번번히 거절했었다. 하지만 CJ측은 현대위아와의 계약에서는 해당 내용을 고스란히 집어 넣었기 때문에 판결 액수에서 크게 차이가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KLS는 CJ대한통운과의 거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금호그룹 시절부터 2~3차례 관련 계약을 진행해 왔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 KLS 관계자는 “CJ그룹이 대한통운을 인수하기 전까지는 이러지 않았다. CJ그룹이 이렇게 나올줄 알았다면 계약을 했겠느냐. 억울해 죽을 지경이다”고 토로했다.

특수화물에 대한 해운중개 수수료는 천자만별이고 원청업체로부터 위탁받은 화물을 재위탁하는 과정에서 돈을 많이 남기는 것이 해운중개기업의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재벌기업이 능력(?)을 인정받는 동안 건실했던 한 중소업체는 사실상 문을 닫았다.

재벌기업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중소기업은 상상도 하기 힘든 시련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재벌기업이 진행하는 작은 기업과의 소송전은 '하청업체 길들이기'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존재하며, 이는 공정사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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