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억 혈세 들여 마련한 자사 항만 두고, 바로 옆 머스크 항에서 10년간 250만TEU 의무 처리해야

▲ 현대상선이 머스크로부터 1개 선석을 임차해 운영해왔던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CUT터미널 전경.

[데일리로그 = 김수란 기자] 현대상선의 과도한 터미널 욕심이 결국 부메랑이 돼 회사를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상선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한진해운 롱비치항터미널을 새로 확보하면서 기존 기항지였던 LA항의 CUT를 머스크에 반납했지만, 머스크는 잔여 10년에 달하는 계약기간 동안 일정량의 물량을 처리하는 조건으로 선석 반납을 승인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은 결국 같은 항만내에 혈세를 들여 자사 터미널을 확보하고도 타사 터미널과 양분해 선박을 기항해야만 하는 웃지못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자사가 운영하는 캘리포니아 소재 터미널 법인인 CUT를 계약기간 전 반납하는 대신 원 계약자인 머스크터미널(APMT, APM터미널)에 2027년까지 10년간 매년 25만TEU 총 250만TEU를 처리해주기로 하고 현재 기항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연평균 처리 물량이 미달할 경우 머스크에 1TEU당 1달러씩 페널티까지 물어내야 하는 약정까지 걸려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 CUT는 미국 캘리포니아 LA항의 터미널을 운영하는 법인으로, 지난 2011년 개장한 컨테이너 전용부두이다. 해당 부두는 머스크의 터미널 운영 법인인 APMT가 운영하는 전체 선석 중 1개 선석을 머스크에서 전대해 운영해 왔었다.

해당 부두 개장 이전까지는 인근 롱비치(LB)항에 CUT 법인이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미국 물류 특성상 철도 인입선이 깔려있지 않으면 운송이 쉽지않아 철도레일이 깔려있는 LA항으로 선석을 확보해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미국 현지에서 LA항과 롱비치항은 같은 항만으로 분류되며, 기존 CUT가 있는 머스크터미널과 한진해운의 롱비치터미널은 바로 옆에 나란히 위치해 있다.

 ▲ 현대상선 CUT 구글 위성 지도. CUT는 머스크터미널 중 선석 일부만 임차해 운영해왔던 터미널이다. 참고로 시사이드프리웨이 앞쪽 터미널이 한진해운이 운영했던 롱비치터미널이다. 양쪽 터미널을 지리상 LA와 롱비치로 나뉘지만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 있다.

전 현대상선 관계자는 “CUT는 원래 바로 옆 롱비치항에 터미널을 운영해 왔지만, 노후화 등으로 인해 2011년 LA항으로 자리를 옮겨 운영하던 법인”이라며, “캘리포니아는 터미널 운영사를 조각내지 않고 크게 내주고, 승인도 잘 내주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상선은 큰 터미널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도 되지 않는 까닭에 머스크가 항만청에서 임대받은 터미널 중 1개 선석을 머스크에서 다시 전대해 사용하고는 CUT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고 덧붙였다.

현대상선이 이처럼 자사 터미널이 있음에도 과도하게 터미널을 확보했던 이유는 머스크터미널에서 ‘쪽방살이’를 하던 서러움을 모면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한진해운이 롱비치터미널을 운영하던 법인인 TTI의 지분 20%를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인수했었다.

지분 인수 당시, 현대상선측은 바로 옆에 자사 부두를 두고 인수를 추진한 이유에 대해 “기존 터미널이 머스크에서 임차해 사용하고 있는데다, 지리적으로 한진해운 터미널이 더 좋기 때문에 지분 인수를 추진했다”고 해명한바 있다.

하지만, 현대상선이 캘리포니아에서 처리하는 물동량은 머스크나 한진해운에 비해 훨씬 적어, 양 터미널을 모두 운영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이 때문인지 실제로 현대상선은 지난 7월 “고비용 구조의 CUT 기항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상선은 CUT 기항 중단을 발표했지만, 해당 터미널의 임차인인 머스크는 순순히 현대측 결정을 승인하지 않았다. 머스크는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터미널을 반납하는 대신 현대상선이 해당 터미널에서 잔여계약기간동안 최소 연간 25만TEU 이상 물동량을 처리해야만 한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전 한진해운 관계자는 “머스크터미널에서 자사 물량 처리를 위해 1개 선석을 겨우 운영하던 선사가 300만TEU나 되는 터미널을 확보했으니, 셋방살이하던 터미널을 운영할 이유가 없어졌을 것”이라며, “그렇지만 계약기간이 10년이나 남은 터미널을 조기에 반납하겠다고 하는데 머스크에서 순순히 받아줬겠냐”고 반문했다.

이어 “결국 연간 최소 처리물동량을 정하고 물량이 미달할 경우 페널티까지 내야하는 등 좋지 못한 조건으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던 모양”이라며, “이 처럼 불합리한 조건을 감수해 가면서까지 현대가 선석을 반납했다는 내용은 이미 현지 항만업계에 파다하게 퍼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해운업계는 현대상선의 한진해운 터미널 확보에 대한 과도한 욕심이 결국 컨테이너 선사로서 자사 터미널이 있음에도 남의 터미널까지 물량을 양분해 기항해야만 하는 웃지못할 촌극을 자처했다는 전언이다.

일본 도쿄와 스페인 알헤시라스에 이어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현대상선이 한진해운 터미널을 확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인수한 세계 각지의 터미널들이 연이어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현대상선의 경영시스템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 다른 한진해운 관계자는 “세상에 어떤 컨테이너선사가 자사 터미널을 두고 바로 옆에 위치한 남의 터미널에서 물량을 처리하느냐”고 반문하고는, “자사 터미널 계약기간이 10년이나 남았으면 한진해운의 롱비치터미널 인수를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은 상식 중에서도 상식임에도 이를 추진한 사실에 뭐라고 해야 할지 어처구니가 없다”고 분개했다.

이어 “해당 터미널 지분 54% 전체를 인수하려다 겨우 20%를 인수하면서 혈세로 198억 원이나 지불하고는 제대로 활용도 못하고 있다”며, “아마 현대측 자금으로 인수를 추진했다면, 이 같이 어수룩하게 한진해운 롱비치터미널의 지분을 인수하진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도 “인수한 한진해운 터미널 5개 중 현재 문제가 드러난 것만 3개에 달하는데, 나머지 2개 터미널은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돈을 쥐어주고 인수하라고 떠먹여 줬는데도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현대상선의 터미널 운영 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국내외 터미널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면서 정부와 산업은행에 돈을 더 달라고 하고 있다는데, 이런 회사가 국민 혈세를 들여 추가로 터미널을 확보하면 운영이나 잘 할 수 있겠냐”며, “외국에서 문제를 일으켜놓고 죄다 숨기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뻔뻔스럽게 터미널을 확보하게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현대상선측은 CUT 반납과 관련해 아무 조건없이 항만청에 반납했다고 해명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CUT는 항만청으로부터 임차한 터미널로 아무런 조건없이 반납했다”고 반박했다.

그렇지만, 해운업계는 CUT가 외신에까지 머스크로부터 임차한 터미널이라는 내용이 여러 차례 보도된데다, 조건없이 반납했다면 머스크터미널로 현대상선 선박이 기항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한진해운 관계자는 “CUT가 머스크로부터 임차한 터미널이라는 사실은 외신에 여러차례 보도됐었는데 왜 그런 내용까지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현대상선 해명대로 아무 조건없이 반납을 받아 줬다면, ‘컨’선사로서 전무후무하게 198억 원이나 들여 확보한 터미널을 두고, 타 선사 터미널로 선박을 대는 이유가 뭔지 궁금할 지경”이라고 비틀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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