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분류거부 시, CJ대한통운 타격 적지 않을 듯

[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택배노조가 오는 21일부터 택배터미널에서의 분류작업을 거부하겠다고 나섰지만, 택배업계가 업계 차원의 일괄 대응에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7일 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분류작업 거부와 관련 14일부터 사흘간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한 결과, 총 4,358명의 노동자(조합원 및 비조합원 포함)가 참여해 전체의 95.5%인 4,160명이 찬성함에 따라 오는 21일부터 분류작업 거부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오는 21일부터 본격적으로 추석택배 배송물량이 쏟아질 텐데, 작업 거부로 분류작업에 큰 차질이 예상된다”며, “하지만, 이미 대책위는 추석배송 일정에 차질이 발생하더라도 사람이 죽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입장을 밝힌바 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또 “분류작업은 택배노동자들이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배송을 해야 하는 장시간 노동의 핵심적인 이유”라며, “하루 13~16시간 중 절반을 분류작업 업무에 매달리면서도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고 있어 분류작업 인력투입이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효성있는 대책”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대책위는 택배업계가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면 언제든 분류작업 전면거부 방침을 철회하고 대화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각 택배업체별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에 온도차가 있는데다, 업계 차원의 일괄적 대응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어 노조측 주장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택배업계는 일단 정부 권고사항은 최대한 이행한다는 방침이지만, 가장 큰 쟁점인 ‘분류작업 인원 충원’ 문제에 대해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0일 ‘택배근로자 보호조치’를 발표, 택배업계에 이번 추석 특별수송기간동안 ▲분류작업 인력 한시적 충원 ▲휴게시설 확충 ▲지연배송 사유로 택배기사에게 불이익 금지 등을 권고한바 있다.

택배업계는 매년 명절 특수기간 동안에는 평상시 보다 30% 많은 인력을 충원해 분류작업에 투입해 왔다. 하지만, 노조측 요구를 들어주게 되면 이번 추석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인력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A사 관계자는 “국토부가 권고한 여러 내용은 충실하게 이행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분류작업 인원을 충원하는 문제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터미널에 간선차량이 도착해 물품을 내리면 이를 코드별로 분류해 각 택배기사들의 차량 앞에 이를 적재해 놓으라는 것이 노조측 주장인데, 이 경우 현장에서 인수를 위한 바코드 확인작업을 또다시 해야 하는 등 작업이 중복돼 분류업무가 연쇄적으로 딜레이 될 우려가 있다”며, “분류인원을 추가로 배치하는 것은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부담이 크지만, 무엇보다 택배기사가 자신이 가져가야할 물건을 찾아 차량에 적재하는 것과 분류작업자가 이 업무를 대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업무효율성 문제 외에도 노조의 분류작업 거부 움직임에 따른 각 택배사의 입장도 제각각이다. 가장 타격이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체는 아무래도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CJ대한통운이다.

택배노조측에 따르면, 노조에 가입된 CJ대한통운 소속 노조원 수는 약 1,300여 명. 택배노조 전체 조합원(3,800여 명) 중 우체국 위탁배송원(2,300여 명)을 제외하면 민간택배사 소속 조합원 가운데 CJ대한통운 소속 조합원이 90% 이상에 달한다.

따라서 택배노조의 분류작업 거부가 현실화 된다면 CJ대한통운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반면,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로젠택배 등의 택배사에 소속된 노조원 수는 각각 30~80여 명 수준으로, CJ대한통운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이 외에도 CJ대한통운의 분류작업 소요시간이 평균 4시간 정도 소요되는 등 경쟁사에 비해 2~3배 많다는 것도 노조원들의 불만을 키웠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시 말해 CJ대한통운의 택배기사들이 유독 분류작업에 따른 불만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주변여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각 사간 시각차가 크다는 점도 또 하나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B사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은 평상시에도 물량이 많아 분류시간이 4시간 정도 되다보니 택배기사들의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나머지 회사들은 분류작업에 드는 시간이 절반도 안 되기 때문에 이로 인한 택배기사들의 불만은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CJ대한통운이 이번 사태에 적극 나선다면 의외로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이 회사는 지난 2년여 동안 택배노조와의 협상 자체를 완강히 거부하는 등 그동안의 교섭요청에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양측 간 미묘한 관계도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의 경우, 평상시에도 택배기사들이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분류작업에 매달려 있어야 해 과로사의 직·간접적 원인이 돼 왔다”며, “특히, 올해에는 코로나로 물량이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추석에는 물량이 집중될 수밖에 없어 한시적으로나마 분류작업 인원을 늘려 조합원들의 업무를 줄여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CJ대한통운을 비롯한 민영택배업계가 분류작업 인원 증원에 동의한다면 지금이라도 분류작업 거부를 철회할 것”이라고 전하고는, “이번 사안이 아니더라도 그동안의 교섭요청에 대해 CJ대한통운이 거부해 일단 대리점하고 교섭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원청업체인 CJ대한통운이 나서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협상이 이뤄질 수 없다. 앞으로도 집요하게 (CJ대한통운측에)교섭을 요청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 우정사업본부는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추석 특별소통 기간동안 전국 25개 집중국의 소포구분기(33대)를 최대로 가동하고, 추가로 17억 6,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분류작업 등에 필요한 임시인력을 1일 평균 약 3,000명 가량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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