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근해항로 운항 선사들에 과징금 최대 1조5,000억 부과 예상
해운법에서 인정한 '공동행위'…공정위 "인정 못해"
중소 컨선사 강력 반발 "과징금 반드시 철회돼야"

정부가 해운재건에 성공했다고 자평하면서 뒤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컨테이너 선사들에게 총 1조5,000억 원 규모의 과징금 폭탄을 준비하고 있어 해운업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동남아항로를 운항하는 국내 컨테이너선사들에게 약 5,600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물릴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한·일항로 운항선사에 약 3,000~4,000억 원, 한·중항로 운항선사에는 6,000~7,000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정위는 한국해운협회 내에 자료가 남아있던 시기인 2003년부터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2018년까지의 항로별 매출액을 기준으로 이같이 엄청난 금액의 과징금을 산정했다. 

다만, 아시아역내 해운업황이 2008년 EU의 독점금지법 폐지와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대형선사들이 해당 시장에 진입하기 전과 후의 상황이 극명히 다른 점을 감안해서인지 공정위측이 자료를 다시 제공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최종 판단을 고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공정위는 해운협회가 자료를 보관하던 2003년 사장단 연찬회를 기점으로 조사에 착수한 때까지를 총 기간으로 산정해 해당 기간의 항로별 매출액별로 각 선사에 과징금 규모를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2008년 전까지는 아시아역내 시장이 나쁘지 않았지만, 이후에는 대형선사들이 남는 선박을 벼룩시장에 투입하면서 기존 연근해선사들이 출혈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라 공정위측이 추가 자료를 다시 제출해 줄 것을 요구한 상황이다”고 전했다.

이 같이 징벌적 과징금 철퇴가 예상되자 해운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컨’선사들에 대한 공동행위를 인정해주고 있는 '해운법'이 존재함에도, 공정위가 이로인한 상업행위를 '불공정행위'로 규정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과징금을 징수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도 다른 법령에 의한 정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법 적용을 면제하고 있지만, 공정위는 이번 사안에 대해선 이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현행 해운법에는 컨테이너 정기선사들의 운임이나 선박 배치 등에 관한 '공동행위'를 합법적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아울러, 공동행위가 아니더라도 선사들의 불법적 행위에 대해선 해운법에 따라 별도의 처벌규정을 따르게 돼 있다. 따라서 이번에 공정위가 '컨' 선사들에 대한 '공동행위'를 이유로 초유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계획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전세계 해운선사들 대다수가 자국 정부로부터 공동행위를 인정받고 있어, 공정위의 이번 역대급 과징금 부과계획이 현실화 된다면 국내 선사들의 국제해운경쟁력 저하도 우려되고 있다.

해운업계는 이번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방침에 상당한 불만과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전국 112개 해운사 노사 및 시민단체는 '해운 죽이기 결사 저지 국민대책위원회(이하 위원회)'를 구성,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계획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특히, 위원회는 해운업계에 대한 공정위의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과 계획을 '해운죽이기'로 규정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위원회는 지난 5일 부산 중구 마린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천억 원에 달하는 공정위의 과징금은 이제 겨우 기사회생하려 하는 해운업을 고사시킬 것"이라며, "공정위는 지금 당장 과징금 부과 방침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해운업계는 정부가 해운재건에 성공했다고 자평하면서 실제로는 해운재건 정책이 시행되던 해에 공정위 조사를 시작했다는 점을 들며, 이는 해운재건에 투입한 세수의 일부를 과징금으로 돌려받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시선도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해운재건 정책으로 발주된 HMM 선박의 처녀항해를 기념하는 출항식에 참석해 “HMM의 초대형선 발주로 해운업이 기적같이 살아났다”면서, “이제 우리는 더 큰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이날 문성혁 해양수산부장관은 해운재건을 넘어 ‘해운산업 리더 국가 실현전략’을 발표하고는 HMM에 1만3,000TEU급 12척 발주를 공표했었다.

해운업계는 정부의 이 같은 앞뒤 다른 정책 추진에 잔뜩 뿔이 나있는 상태다.

과징금 철퇴를 맞은 A선사 관계자는 “해양진흥공사를 통해 HMM에 투입한 정책자금이 4조1,000억 원인데, 결국 정부가 앞에서는 해운재건을 외치면서 뒤에서는 정책자금에 투입한 일부를 과징금을 빌미로 선사들에게 받아가겠다는 심산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비판했다.

공정위의 압수수색을 받았던 회사의 한 관계자도 “해운재건의 핵심이 원양선사 없이 연근해선사도 존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만은 있었지만 정부의 정책에 동참했었다”면서, “그런데 앞에서는 해운을 살린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받겠다는 심보는 아우들(연근해선사) 것 뺏어서 형(HMM)한테만 주겠다는 것과 진배없다”고 지적했다.

해운 전문가들은 정책에 대한 정부부처간 엇박자에 대해 정부 스스로 결자해지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번 과징금 부과 계획이 현실로 이어져 해운업계의 사례로 남는다면 앞으로 산업계에서는 정부가 정책자금을 지원한다고 생색을 내놓고 뒤에서는 마이너 업체들에게 세수를 걷어 메워 주려한다는 오해가 자리잡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 해운 전문가는 “지금까지 정부가 특정산업에 지원해놓고 이처럼 마이너업체들에게 지원 자금의 일부를 세수형식으로 확보한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면서, “현재 해운업계가 겪는 상황은 부처간 이견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어찌됐든 이러한 부분은 정부가 스스로 풀어줘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문제를 그냥 덮어두고 간다면 앞으로 시장에서는 정권이 특정산업을 지원하는 이면에는 투입 자금의 일부를 해당 산업계에서 다시 회수한다는 오해를 살수도 있다”면서, “'해운법이 먼저냐, 공정거래법이 먼저냐' 하는 부처간 갈등은 나중 문제이다. 해운재건의 성공 이면에 공정위의 천문학적 과징금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공정위측은 ‘컨’선사들의 과징금 부과문제에 대해선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컨’선사들의 공동행위 문제에 대해서는 사건이 진행 중인 관계로 확정된 것이 없어 최종 처분이 나와야 알 수 있다”면서, 해운재건 정책에 대한 공정위의 엇박 행보 논란에 대해서는 “개별사업에 대해 정부정책과의 연관성 문제를 말할순 없다”고 답변했다.

한편, 공정위가 해운협회를 운임담합 근거지로 지목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HMM이 협회 회원사 탈퇴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HMM은 연근해항로 협의체인 한일항로협의회와 동남아항로협의회에 대해 공정위 조사가 본격화 되면서 회원사에서 탈퇴한 바 있다. 또 같은 원양노선을 운항하는 SM상선도 한일항로협의회를 탈퇴하는 등 원양선사들은 해운협회와 선긋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