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아터진 시장에 터닝포인트로 작용하길

[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현대로지스틱스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공개적으로 택배단가를 20% 이상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현대의 이번 결정에 택배업계는 ‘용기있는 결단’이라는 응원이 압도적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경영난 돌파를 위한 현대의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업계는 물론 여론도 현대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많다.

업계는 그렇다치더라도 가격을 인상한다는데 소비자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다. 왜 일까. 간단하다. 택배이용 요금이 너무 싸기 때문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근무하는 택배기사들의 어려움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이번 발표에 여론은 요금을 인상하면 택배기사들에게 그 혜택을 꼭 돌려줘야 한다는 지적이 압도적이라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택배업계는 이번 현대의 깜짝 발표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전례없이 향후 추이를 살피고 있다. 또 자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사실 지난 십 수년 간 모든 택배업체가 요금 인상에 절실히 공감을 해 왔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이미 10년 전부터 택배단가는 바닥을 헤맸지만, 단가 인상시 물량 이탈을 두려워 한 각 업체는 먼저 나서서 요금을 인상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때문에 적어도 택배업계에 있어서는 택배요금 인상 문제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이 여겨져 왔다. 이번에 현대가 이 상자를 열었으니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현대의 결정은 시장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하고,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택배업계의 처지를 생각하면 단가를 인상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이번 현대의 결정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지만, 당장 우리도 가격을 인상하지는 않을 계획입니다. 화주나 소비자들로부터 가격만 올린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더 지켜보고 결정할 것입니다.” A사 택배영업 책임자의 말이다.

B사, C사 관계자 역시 이와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현대의 이번 결정을 면밀히 지켜보되, 현 시점에서 요금 인상에 동참하긴 쉽지 않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경쟁사 입장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처신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냉정하게 따져 현대의 이번 결정은 조금은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시장점유율은 10% 안팎이다. 시장 가격을 좌지우지 할 정도가 아니다. 때문에 성공에 대한 확신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현대도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사실 내부에서도 이번 결정을 하기에 앞서 반대 의견이 많았습니다. 단가 인상 결정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대표께서 밀어 붙였습니다. (노영돈)대표는 회의석상에서 ‘누군가 꼭 해야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으니 우리가 먼저 하자’고 결론을 내렸고, 또 행동에 옮겼습니다. 시장에서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대 관계자의 말이다.

이번 현대의 승부수가 어떻게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시장에는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가격인상에 성공한다면 경쟁업체도 가격을 올리는데 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실패한다면 당분간 그 어떤 업체도 요금인상에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통합물류협회는 현대가 요금인상에 실패해 물량이 이탈하더라도 예전과 같이 경쟁사에서 이를 덥석 받아먹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통물협 관계자는 “택배사가 모두 어려운 가운데 현대가 독자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은 매우 잘 한 일”이라며 “현재 대다수 택배업체가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단가인상에 실패하더라도 현대의 물량이 다른 업체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물협에 따르면, 지난해 택배물량은 2011년 대비 1억 600만 상자(8.2%) 증가한 14억 598만 상자를 기록했으며, 매출액 역시 7% 늘어난 3조 5,200억 원을 기록했다. 물량이나 매출 모두 적지않은 비율로 늘어났다.

하지만, 상자 당 평균단가는 1.1% 감소한 2,506 원으로 나타나 여전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10년 전인 지난 2003년 평균단가(대한통운, 한진, 현대택배, CJ GLS 등 빅4사)는 3,550 원이었다. 10년 동안 물가는 급상승 했지만, 택배서비스 단가는 1,000 원 넘게 떨어졌다.

지난 1992년 국내에 택배시장이 형성된 이후 20년이 넘게 택배 단가는 끝을 모르고 떨어져 왔다. 이 기간 택배기사들은 하루 한 끼를 먹어가며 15시간 넘게 골목을 누볐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때문에 택배현장을 떠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같이 이용하는 택배시장의 현실이다. 더 이상 내려갈 바닥이 없는 것이다.

현대는 이번 요금 인상에 성공하면 가장 먼저 택배기사들의 처우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물론 각 영업소나 케이스별로 적용기준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인상에 성공하면 이 회사에서 근무하는 기사들의 살림살이는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현대가 상징적으로 발표한 ‘500 원 인상’은 아니더라도 이러한 움직임이 업계 전반적으로 확산된다면 곪아터진 작금의 택배현장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순 있지 않을까.

모든 택배업체가 열기를 꺼려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현대가 연 상자에서 신화에서와 같이 희망이 빠져 나오기도 전에 뚜껑이 닫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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