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산업 제도권 진입과 공평한 법 적용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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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로그 = 오병근 기자] 내달 1일부터 카파라치제가 시행될 것이라는 소식에 택배업계가 패닉상태를 보이고 있다. 자가용 차량을 운행하는 택배기사들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운행 거부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 벌이가 200만 원 남짓인 자가용 택배기사들에게 카파라치는 몸서리치게 싫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언제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 있는 카파라치에게 사진 한 장 찍히면 수백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현재 운행되고 있는 1t 택배 차량의 절반이 자가용 차량이라고 한다. 이는 카파라치가 본격 활동하게 되면 택배 차량 중 절반 가량이 도로에서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몇몇 택배업체는 카파라치제가 도입되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각 업체에 따라 많고 적음에는 차이가 있지만, 자가용 택배차량을 활용하지 않는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 그야말로 택배시장 형성 20년 만에 최대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현재 택배업계는 카파라치제를 6개월만 유예해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인지 국토부, 서울시, 경기도, 택배업계 등 이번 소동과 관련된 업·관계의 가장 큰 관심은 오로지 ‘6개월간 제도 유예’에 치우쳐 있다. 당장 소나기만 피해보자는 것이다.

살펴보면 이번 카파라치 소동의 원인은 너무나 어이없는 부문에서 비롯됐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하면서 2013년 1월부터 화물운송시장에 카파라치제를 도입키로 했다. 이는 택배업계도 인지하고 있었던 사안이다. 문제는 법제처 심의과정에서 관련 법의 시행시기가 2012년 7월 1일로 6개월 당겨졌다는 점이다.

국토부는 지난 4월 택배 차량 증차계획을 확정 발표, 늦어도 올해 말까지 증차를 완료할 계획이었다. 따라서 카파라치제 도입이 당초 예정대로 내년 1월이었으면 이 같은 소동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업계가 ‘6개월 유예’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 문제 해결에서 비껴나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여전히 택배시장에 내재돼 있는 위험요소를 떠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카파라치 소동을 계기로 택배시장이 안고 있는 원론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장 카파라치 문제 해결이 시급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택배산업의 제도권 진입’과 ‘만인에 공평한 법 적용’이 우선돼야 한다.

기자는 지난 2009년 7월 [‘不法이냐 無法이냐’, 혼란 겪는 택배시장]이라는 제하의 칼럼을 통해 세 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지적했었다. 이후 잠잠했던 자가용 화물차량 불법 유상운송행위가 정확히 3년 만에 또 다시 수면 위로 등장한 것이다.

당시 기자는 택배산업에 적용되는 법이 없어 택배가 ‘동네 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정부도 문제의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있으나마나 한 단속’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까지도 국내 택배업계가 특송업계와 우체국택배에 비해 상당히 불편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DHL, FedEx 등 특송업계는 영업용 차량이 아닌 자가용 차량으로 화물을 운송하고 있지만, 단속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번 카파라치 소동에서도 비껴나 있다. 이 업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단속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특송업계는 “국제택배요금은 공항에서 공항까지의 운송요금을 받는 것이며, 해당 국가의 공항에 도착한 이후 화물차량에 의한 배송요금은 무료이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오고 있다. 이 주장들을 요약하면 국제택배요금 중 화물차에 의한 물품 배송료는 항공요금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무료봉사(?)라는 것. 따라서 화물차에 의한 유상운송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단속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얼토당토않은 궤변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정부 묵인 하에 아직까지도 이러한 논리는 현재진행형이다.

택배업계를 불편하게 하는 또 한 가지는 우체국택배와의 부당한 경쟁이다. 정부가 화운법을 개정해 지난 2004년 4월부터 차량의 신규 증차를 제한함에 따라 택배업계는 단 한 대도 증차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우체국택배 차량은 허가제로 전환된 이듬해인 2005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6년 7개월 동안 무려 885대나 증차됐다. 민간업계는 1,000만 원이 넘는 프리미엄을 주고 번호판을 사야 하지만, ‘공용차량 관리규정’에 따라 우체국택배는 행정안전부와의 협의를 통해 언제든지 차량을 증차할 수 있다. 택배 차량이 언제부터 공용 차량이었는지 궁금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이유로 현재 전국에서 운행되고 있는 모든 우체국 차량이 불법 유상운송행위에서 사실상 면죄부를 받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기준 우체국택배 차량은 1,723대이다. 2010년 말 기준 우체국택배의 시장점유율은 물량 기준 10% 매출액 기준 10.2%이다. 이 정도의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700여 대로는 어림도 없다. 비슷한 규모의 A사가 4,500여 대를 운행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우체국택배는 나머지 2,800여 대를 민간업체에 외주를 준다는 것인데, 과연 이 외주 차량들이 모두 사업용(노란색 넘버)인지는 의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특송업계들과 우체국택배에는 이번 카파라치 소동이 남의 집 얘기이다. 유사하거나 똑같은 업종인 특송업계와 우체국택배와 비교해보면 택배업계가 이렇듯 불편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택배업계에 향후 일정분의 증차가 배분되더라도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은 높다.

택배산업의 건전한 발전은 카파라치제 유예와 택배 차량 일부 증차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제도권 진입과 만인에 공평한 법 적용’이라는 원론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시장은 또 다시 요동칠 것이다. 3년 전 묻어뒀던 문제가 현 시점에서 재현된 것과 같이.

* 오병근 기자가 지난 2009년 7월 타 언론사 재직시 게재한 [‘不法이냐 無法이냐’, 혼란 겪는 택배시장] 제하의 칼럼은 블로그(http://blog.naver.com/obkfree/80087144182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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